차례

[별지 1] 1948년 4·3사건 당시 제주도 

[별지 2] 조선공산당이 찍은 위조지폐, 을100원권(6회에 걸쳐 1,200만 원)


 1. 우리나라 초기 공산주의의 배경

(1) 1919년 3·1독립운동 이후 전개된 공산화의 물결 

(2) 1925년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조직 

(3) 6·10만세운동 후 조선공산당 사건 

(4) 공산주의의 지하활동


2. 해방 이후 공산주의의 확산

(1) 해방과 동시에 38선으로 분단된 조국 

(2) 해방 직후, 박헌영의 등장과 조선인민공화국 

(3) 조선공산당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4) 위조지폐 사건 후 박헌영의 월북(1946년 9-10월) 

(5) 북로당(김일성의 북조선 분국)과 남로당(박헌영의 서울 중앙당) 

(6) 1946년 9월 총파업(23일부터 약 1주일간) 

(7) 위조지폐사건 이후 잇따른 암살사건


3. 1946년, 대구10월사건

(1) 대구10월사건의 전개 

(2) 경북 도내 군청과 경찰서의 피해 

[별지 3] 대구10월사건 경북 22개 군청과 경찰서 습격(1946.10.1.-11.11.) - 2 

(3) 경관들의 치료를 거부한 대구의사회 

(4) 경북·경남·전남 지역 등 전국으로 확산 

(5) 대구10월사건의 배후 

(6) 대구10월사건의 결과


4. 1948년, 제주 4·3사건

(1) 한반도의 최남단, 제주도의 공산당 조직 

(2) 1947년, 제주 3·1발포사건 

[별지 4] 1947년 3·1발포 사건 당시 제주북초등학교 주변 

(3) 5·10단독선거 반대를 위한 1948년 2·7사건 

(4) 4·3사건의 결정 시기 

(5) 4·3사건의 시작 

(6) 5·10단독선거 반대 

(7) 5·10단독선거 결과 제헌국회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5. 김익렬(9연대장)과 김달삼(인민유격대 사령관)의 평화협상

(1) 제주도 모슬포 주둔 9연대에 진압 작전 요청 

(2) 인민유격대 사령관 김달삼과의 평화협상 

(3) 제주 9연대장 김익렬 중령의 해임(1948년 5월 6일)


6. 4·3사건 발생 이후 제주 남로당의 음모

(1) 제주 9연대 41명의 탈영 

(2) 연대장 박진경 대령 피살 

(3) 최경록 연대장을 암살하려는 문상길의 음모 

(4) 포로수용소장이 된 오일균 소령의 음모 

(5) 한의사를 통해 총과 실탄을 빼돌린 김창봉 대위 

(6) 해주인민대표자대회에 참석차 월북한 김달삼


7. 제주 인민유격대 제 2대 사령관 이덕구의 선전포고


(1) 인민유격대 제 2대 사령관 이덕구(1948.8.-1949.6.7.) 

(2) 1948년 9-10월, 인민유격대의 학살과 만행 

(3) 1948년 10월 11일, 제주도 경비사령부 설치

(4) 1948년 10월 17일, 무허가통행금지 포고령 

(5) 1948년 10월 24일,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이덕구의 선전포고 

(6) 인민유격대와 내통한 제 9연대 내 비밀조직 발각(10월 28일) 

(7) 1948년 11월 2일, 인민유격대의 제주 9연대 6중대 공격 

(8) 제주도경찰국 내의 인민유격대 내통 비밀조직의 발각 (11월 7일 제주도 적화음모사건) 

(9) 1948년 11월 17일 계엄 선포 

(10) 인민유격대의 국군 공격과 진압군의 공격(중산간 마을 피해) 

(11) 제 9연대를 대전 제 2연대와 임무교대(1948년 12월 29일) 

(12) 제주도지구 전투사령부 신설(1949년 3월) 

(13) 이덕구의 최후(1949년 6월 7일) 

(14) 이덕구를 이은 인민유격대 사령관들 


8. 결론 - 제주 4·3사건의 결과와 진상

제2권 서문

제주도는 우리나라 육지(목포)에서 약 140㎞ 떨어져 있으며, 동서로 73㎞, 남북으로 32㎞, 섬 전체 넓이는 약 1,850㎢이며, 남한 전체의 약 2%에 해당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드문 천연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관 광명소로, 우리나라의 자랑거리요 천혜의 선물이요 아름다운 낙원입니다. 제주 태생 도민들은 대체로 선량하 여 때묻지 않은 순박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순박한 제주도민들은 4·3사건 때 어떤 사상이나 이념을 가지고 좌와 우로 가른 것이 아니었고, 피치 못할 시대적 정황 속에서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려고 밤이면 산사람들 에게 본의 아니게 협조와 복종을 해야 했고, 낮이면 대한민국 백성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중고(二重苦)에 허덕 였 습니다. 당시 산사람들을 따라 산으로 올라간 주민들은 ‘곧 인민공화국이 세워지니까 2-3개월만 고생하면 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는데, 산에서 죽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상황이 악화되자, 여기서 죽느니 차라리 가족들 앞에서 죽겠다며, 집으로 돌아가는 자가 많았다고 합니다(1999.9.12. MBC 방영「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1회 제주4.3사건). 


6년 6개월 간 밤낮으로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극한 고통 속에서 제주도 유사 이래 가장 많은 도민들이 다치 고 죽어 갔으며, 오래도록 고통 속에 신음하였고, 제주도의 아름다운 산천은 무참히 짓밟혀 아물기 힘든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야말로 참혹했던 비극의 역사였습니다. 제주도민들 가슴에 응어리진 그 천추만대의 한 (恨) 을 누가 씻어 주며 무엇으로 그 보상을 다 할는지... 생각할수록 원통하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4·3사건의 쓰라림을 몸소 체험한 제주도민을 직접 찾아가 만나 보니, 모두가 4·3사건이 왜곡되고 진실이 은폐되어 있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후손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도록 하기 위해 증언이나 서명을 부탁하면, 처음에는 거북하게 생각하고 거절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63년이나 지났는데도 4·3사건의 그 진상 이 아직도 속 시원히 풀리지 않은 까닭에, 제주도민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어떤 위압감에 눌려 아물지 않 은 상처와 눈물과 한(恨)을 안고 있는 듯하여,  실로 쓰린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어둡고 슬픈 역사라 할지라도, 진실 밝히기를 꺼려하여 침묵으로 외면하거나 회피하면서 흘러가는 세 월에 막연한 기대를 걸고 있다면 큰 잘못입니다. 심각한 왜곡과 편향으로 잘못 인식된 역사를, 더 늦기 전에 곧게 펴는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사건을 체험한 세대가 모두 세상을 떠나기 전에, 진실이 영영 묻히기 전에 역사를 사실대로 밝히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막중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훗날 아무것 도 체험하지 못한 우리 후손들은, 왜곡된 역사의 대가를 우리가 겪은 그 이상으로 가혹하게 치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진상규명의 최우선 작업은, 이 사건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서 무엇 때문에 어떻게 일어난 것인 지를 밝히고, 그 역사적 사실만은 정직하게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나라의 앞길을 가로막는 지난날의 어둡고 부정적이고 답답했던 마음들이 하나 둘 밝아지고 긍정적이고 통쾌한 마음으로 변화될 것이 며, 그로 인해 우리 후손들은 마음이 하나 되어 나라의 밝은 미래를 펼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국내의 여러 단체에서 제주 4·3사건을 연구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으나, 너무 좌편향적인 데다 민중항쟁이라 고 말하는 이가 많습니다. 신상준 박사(대구대 총장 역임)가 만 9년 동안 제주 4·3사건    을 연구한 끝에 발 간한「제주도 4·3사건Ⅰ~Ⅴ」(제주문화, 2010)    이라는 저서와 제주산업정보대에 재직했던 고문승 교수가 펴 낸「제주 사람들의 설움」(신아출판사, 1991)과 같이 올바른 시각으로 역사를 되짚어 주는 서적은 손에 꼽을 정 도로 적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긴 고통이었던 제주 4·3사건, 그에 대한 폭넓고 전문적인 연구에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흘린 고귀한 피의 터전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 중에도 제주도민이 흘린 피의 희생은 매우 큰 것입니다. 실로 제주도민의 고귀한 희생은, 6·25전쟁에서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한 줄기 소망의 빛이었고, 자유민주주의 건설의 위대한 토양이 되었으며, 오늘날 부강한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제주 4·3사건을 진압하다가 전사한 9연대장 박진경 대령을 비롯해, 이 사건을 진압하면서 순직한 군인 186명, 경찰 153명, 우익 인사 1,673명, 중상모략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제주도민들... 그들의 영 혼을 생각하면서, 반드시 그들을 위로해 주시고 그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그 자손 대대에 모두 보상하 여 주시기를 머리 숙여 기도합니다. 이제 그분들의 애국혼을 여기 새기어, 부디 제 마음속의 무거운 빚을 조 금이나마 갚고 나라사랑에 이바지할 수 있기만을 소원합니다. 


역사적 사실은 결코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해석에 있어 여러 의견이 나올 수는 있으나 실체적 진실까지 왜곡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강자(승자)편에서 역사적 진실 자체를 왜곡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역사는 더해서도 안 되고 빼서도 안 되며 정확한 사실 그대로 밝혀져야 합니 다. 그 순간에 역사는 현재 속에서 놀라운 생명력을 발휘하며, 현재를 곧게 비추어 주는 선명한 거울이 되며, 미래를 향해 올바른 방향을 힘차게 외치는 나팔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왜곡 날조된 역사는 필연코 우리 와 후손들을 나약하게 하고 병들게 하여 나라의 장래를 암담하게 만듭니다. 과거 역사를 사실대로 진단하지 못한다면 앞을 못 보는 장님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국토, 내부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념적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입 니다. 그러므로 더더욱 거짓 없는 역사의 보존을 위해, 사실을 사실대로 왜곡 없이 기록하는 일과 젊은 세대 들을 위한 올바른 역사 교육이 강력히 요청되는 것입니다. 국사를 정직하게 사실대로 거짓 없이 기록하고 이 야기할 때, 비로소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어 애국심을 심어 줄 수 있습니다. 


국가(國家)란 민족의 커다란 집입니다. 나라 국(國)에 집 가(家),   국가는 실로 민족 대식구가 모여 사는 영원 하고 광대한 집입니다. 이 나라에 사는 백성들은 저마다 대한민국의 한 가족 한 식구인 것입니다. 그래서 ʻ나 라ʼ라고 하는 것은 상황과 필요에 따라 입었다 벗었다 하는 옷가지 같은 것이 아니고, 절대로 떼어내 버릴 수 없는 내 살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백성과 국가는 일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디 이 책을 읽는 대한민국 백성 모두가 뜨거운 민족혼으로 조국의 앞날을 늘 생각하고 염려하며, 나아가 일사각오(一死覺悟) 애국애족의 일념으로 나라를 지키는 진실된 애국자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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