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별지 1] 여수 순천 사건의 주동자 김지회·홍순석 사살 장소(1949년 4월 9일)
[별지 2] 빨치산 총사령관 이현상의 아지트와 그의 최후(1953년 9월 17일)
1.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사건
(1) 남로당의 국방경비대 침투 공작
(2) 영암 군경 충돌 사건(1947년 6월 1일)
(3) 국방경비대 여수 14연대 창설과 음모
(4) 우체국 일반전보를 통해 하달된 제주도 출동 명령
(5) 인사계 지창수 상사의 선동
(6) 무기고 점령
(7) 14연대 핵심 장교들의 죽음
(8) 여수 인민위원회 소속 23명의 가담
(9) 5시간 만에 여수 시내 점령
[별지 3] 1948년 10월 19일 여수 14연대 반란과 진압
(10) 여수 경찰서장 고인수의 처형
(11) 순천 경찰서 장악
(12) 순천 경찰서장 양계원 총경의 처형
(13) 여수와 순천의 탈환
(14) 애양원의 한센 환자들을 돌보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기도한 손양원 목사와 그의 두 아들(동인, 동신)
(15) 지령을 내린 이중업·이재복
2. 여수 14연대 반란, 진압부대의 연속된 반란
(1) 1948년 10월 21일, 전투사령부 설치
(2) 1948년 10월 23일, 여수·순천 지구에 계엄령 선포
(3) 광주 4연대 2대대 1개 중대의 반란
(4) 마산 15연대 최남근 연대장, 반란 부대에 자진 투항
(5) 나주 주둔의 중대 반란(11월 2일)
(6) 군산 12연대 5중대장 김응록 중위 음모
(7) 대구 6연대 반란
3. 지리산으로 들어간 반란군
(1) 지리산에 들어간 김지회 부대의 12연대 공격
(2) 12연대장 백인기 중령의 자결
(3) 반란군의 구례 기습
4. 국가보안법 제정과 군 내부 좌익 숙군
(1) 국가보안법 제정 배경
(2) 국가보안법의 대상 및 개정
(3) 군 내부 좌익 세력 10,317명(숙군 4,749명 + 탈영 5,568명)
(4) 국가보안법 발표 후 강태무·표무원 소령의 월북 사건
(5) 국가보안법 존치(存置)의 당위성
5. 서울시당 홍민표와 그에 의한 33만 명 자수
6. 국회 내 프락치에 의한 미군 철수
(1) 김일성 직계 북로당 성시백과 남로당의 국회공작
(2) 노일환·이문원을 중심한 국회프락치 주동자 13명
(3) 국회프락치 62명의 미군 철수 강력 요청
(4) 여성공작원 정재한(鄭載漢)과 암호문서
(5) 국회프락치 사건 수사 담당 김호익 총경의 암살(1949.8.12)
(6) 국회프락치 사건의 공판(국회장악 음모 발각)
(7) 납북된 국회프락치 사건 관계자들의 비참한 최후
7. 빨치산 토벌 작전
(1) 호남·지리산 지구 전투사령부의 빨치산 토벌 작전(1949년 3월1일-1949년4월4일)
(2) 군경 합동 지리산 지구 토벌 작전(1949년 9월-1950년 2월)
(3) 빨치산 소탕을 위한 국군 11사단 창설(1950년 10월-1951년 4월 6일)
(4) 빨치산 토벌 작전을 위한 3개 사령부 신설(1951년 5월)
(5) 백야전사령부(백선엽 야전전투사령부, Task Force Paik)(1951년 11월 26일)
8. 14연대 반란 주동자들의 최후(김지회·홍순석·지창수)
(1) 호남·지리산 지구 전투사령부의 빨치산 토벌 작전(1949년 3월1일-1949년4월4일)
(2) 군경 합동 지리산 지구 토벌 작전(1949년 9월-1950년 2월)
(3) 빨치산 소탕을 위한 국군 11사단 창설(1950년 10월-1951년 4월 6일)
(4) 빨치산 토벌 작전을 위한 3개 사령부 신설(1951년 5월)
(5) 백야전사령부(백선엽 야전전투사령부, Task Force Paik)(1951년 11월 26일)
9. 남북 노동당 대남공작 최고책임자들의 최후
(1) 이재복(남로당 군사부 총책)
(2) 이중업(남로당 중앙조직부 총책)
(3) 이강국(남로당 민족전선 사무국장)
(4) 국제 여간첩 김수임(이강국의 애인)
(5) 정태식(남로당 민족전선 중앙위원)
(6) 성시백(김일성 직속 북로당 남반부 정치위원회 총책, 공화국 영웅 1호)
(7) 이주하(남로당 무장분야 총책)
(8) 김삼룡(남로당 총책)
(9) 박헌영(남로당 최고 총수)
(10) 최고 지식층을 비롯한 남로당 대다수(약 5만) 숙청
10.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과 부사령관 이영회 201
(1) 빨치산 총사령관 이현상의 최후(1953년 9월 17일)
(2) 부사령관 이영회의 최후(1953년 11월 27일)
(3) 허망하게 죽어 간 빨치산 간부들
(4) 마지막 빨치산 최후 2인, 정순덕(여)과 이홍이(남)
[부록] 민족 중흥의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
제3권 서문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1948.8.15)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참혹하고 비극적인 사 건이 일어났습니다. 1946년에는 1월 찬탁투쟁, 9월 총파업투쟁, 대구10월사건이 일어났고, 1947년에는 3·1절 기념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948년에는 2.7사건, 제주 4·3사건, 5·10단선단정 반대, 여수 순천 사건 등이 계속 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1950년에 한반도 역사상 최대 비극인 6·25전쟁이 발발하고 말았습니 다.
1948년 남한의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제주 4·3사건이 일어났을 때, 정부에서는 대규모의 경비대와 경찰대의 병력을 투입하여 단시일 내에 공산세력들의 만행을 모조리 진압하려 하였으나, 남로당 세력이 군 내부에 뿌 리깊이 잠입하여 있었으므로 진압은 장기화되었습니다. 4·3사건은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내었을 뿐 아니라, 김익렬의 뒤를 이어 제주 9연대장으로 파견되었던 박진경 대령이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을 받은 제주 9연대 내의 남로당원에 의해 암살되었습니다. 육군본부(이하 육본)에서는 제주 4·3사건을 진압할 목적으로 여 수 14연대에 제주도 출동명령을 우편으로 하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극비 명령이 여수 우체국에 근무하 던 남로당원에 의해 누설되어, 여수 14연대장 박승훈 중령보다 이재복(남로당 군사부 총책)과 이중업(남로당 중앙조직부 총책)이 먼저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남로당은 여수 14연대 내의 인사계 지창수 상사와 김지회 중위, 홍순석 중위를 중심으로 한 50여 명의 남로당원들이 출동 당일에 사건을 일으킬 준비를 치밀하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동(東)으로는 순천과 하동, 서(西)로는 벌교와 보성, 북(北)으로는 구례 일대를 휩쓸어, 시내의 관공서 마다 인민공화국 포스터가 나붙고 붉은 인공기가 휘날렸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바뀐 듯했습니다. 여수 와 순천 시내에서는 우익 단체와 경찰 그리고 그 가족들에 대한 살육과 난동이 약 7-10일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무자비하게 자행되었습니다. 거리마다 집집마다, 우물이며 하수구, 논둑, 경찰서 등에 처참하게 죽은 시체가 나뒹굴고, 가는 곳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4연대 반란 진압 차 출동하려던 광주 4연대 반란, 대구 6연대 반란, 마산 15연대 반란 등이 연쇄적으로 이어졌고, 대한민국은 건 국 2개월 만에 나라가 전복될 큰 위기에 직면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을 제정(1948년 12월 1일 법령 통과)하였는데, 이때 군 내부에 거미줄처럼 침투해 있던 좌익 세력을 10,317명(숙청 4,749명, 탈영 5,568명)이나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여수 순천 사건을 가리켜 14연대 하사관 세력이 독자적으로 일으킨 ʻ봉기ʼ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는데, 그것 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여수 순천 사건은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을 받은 여수 14연대 안의 남로당원들이 계획적으로 일으킨 군 반란이었습니다. 여수 인민위원회 소속 23명은 1948년 10월 19일 20시경에 14연대 정문 앞 식품점에서 기다렸다가, 성공했다는 연락을 받자 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르고 즉시 부대 안으로 들어 가 함께 무장하고 가담했습니다. 이는 여수 남로당에서 지령을 내렸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14연대 반란군이 여수를 점령하면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경찰과 우익의 인사들과 그 가족들과 친척들이었습니다. 반란군 초기 사령관 지창수 상사가 ʻ제주 출동에 앞서 악질 반동 경찰부터 타도하자. 지금 인민군이 38선을 넘어 남진 중에 있으니 모두 나를 따르라ʼ고 연설한 내용에서 확인되듯, 경찰이 인민을 착취 하고 통일을 저해하는 반동분자라는 이름하에 너무나 비참하게 처형되었고 그 시체들은 아무렇게나 버려졌습 니다. MBC방송「이제는 말할 수 있다」제5회(1999.10.17), ʻʻ여수 14연대 반란ʼʼ
당시 여수(양민 1,200명 사망)와 순천(양민 1,134명 사망)에서 단시일 내에 수많은 생명이 저들 손에 들려진 신식 무기에 의해 무참히 살상되었는데도, 그것을 봉기라고 한다면 이는 역사를 완전히 왜곡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백성이라면 피비린내 나는 6·25동란과 그에 버금가는 공포의 여수 순천 사건을, 그 근본까지 자세 히 살펴야 합니다. 해방 이후 김일성의 남한 적화 야욕과 박헌영의 지령대로 움직이는 남로당 세력 때문에 나라가 극한 혼돈 속에 빠진 것과, 양심의 가책도 없이 살인을 밥 먹듯 자행했던 공산당의 소름끼치는 학살 과 만행을 생생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실로 너무나 엄청난 대가와 희생이 지불된 역사적 진실과 그 교훈을 등한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통계조사 결과, 6·25가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13-19세에서 62.9%, 20대에서 58.2%였고,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37.1%와 41.8%였습니다(조선일보 2010년 3월 26일자). 또한 초중고 학생의 40%가 3·1절 이 무엇을 기념하는 날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경향신문 2010년 3월 1일자). 우리나라 현대사에 대한 청소년들의 심각한 무지와 무관심, 그 때문에 모든 분야에서 쉽게 좌경화해 가는 것을 보면서, 부모 세대로서 어느 때보다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게 됩니다.
역사적 사실은 결코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해석에 있어 여러 의견이 나올 수는 있으나 실체적 진실까지 왜곡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강자(승자)편에서 역사적 진실 자체를 가감하거나 왜곡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역사는 더해서도 안 되고 빼서도 안 되며 정확한 사실이 그대로 밝혀져야 합니다. 그 순간에 역사는 현재 속에서 놀라운 생명력을 발휘하고, 현재를 곧게 비추어 주는 선명한 거울이 되며, 미래를 향해 올바른 방향을 힘차게 외치는 나팔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왜곡 날조된 역사는 필연코 우리와 후손들을 나약하고 병들게 하여 나라의 장래를 암담하게 만듭니다. 과거 역사를 사실대로 진 단하지 못한다면 앞을 못 보는 장님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국토, 내부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념적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입 니다. 그러므로 더더욱 거짓 없는 역사의 보존을 위해 사실을 왜곡 없이 기록하는 일과 젊은 세대들을 위한 올바른 역사 교육이 강력히 요청되는 것입니다.
국가(國家)란 민족의 커다란 집입니다. 나라 국(國)에 집 가(家), 국가는 실로 민족 대식구가 모여 사는 영원하 고 광대한 집입니다. 이 나라에 사는 백성들은 저마다 대한민국의 한 가족 한 식구인 것입니다. 그래서 ʻ나라ʼ 라고 하는 것은 상황과 필요에 따라 입었다 벗었다 하는 옷가지 같은 것이 아니고, 절대로 떼어 내버릴 수 없는 내 살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백성과 국가는 일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디 이 책을 읽는 대한민국 백성 모두가 뜨거운 민족혼으로 조국의 앞날을 늘 생각하고 염려하며, 나아가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일념으로 나라를 지키는 진실된 애국자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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