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설교
2019년 11월 12일 참평안(champyungan.com) 생명의 양식
열왕기하 7:1-20, 고린도후서 5:17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욥은 마음을 빈 깡통처럼 비운 사람입니다. 이권과 보답을 바라지 않고 마음을 완전히 비운 절대 감사의 인물이었습니다. 말은 쉽지만 우리가 욥같이 고난을 당하 면 그저 앞이 캄캄할 것입니다. 하나님만 절대 의지하고 믿고 바라며 아무 조건 없이 뜨겁 게 사랑했던 욥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아들, 딸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할까 봐 매일 제물을 바치며 눈물겹게 예배드리고 기도하던 욥의 모습을 그려 보십시오.

우리의 절대 원수 사탄이 하나님 앞에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너는 어디 갔다 오느냐” 물 으셨습니다. 사탄은 답했습니다. “땅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왔습니다.” 세상일은 무엇 이든 안 다는 식의 뻔뻔한 답변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한 사람의 이름을 말씀하셨습니 다. “너는 내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만큼 온전하고 진실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 한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욥 1:8 공동번역) 사탄이 대꾸했습 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당신께서 친히 그와 그의 집과 그 의 소유를 울타리로 감싸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주 셨고 그의 가축을 땅 위에 번성하게 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제 손을 들어 그의 모든 소 유를 쳐보십시오. 그는 반드시 당신께 면전에서 욕을 할 것입니다.”(욥 1:9-11 공동번역) 그럴듯한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손에 욥의 생명을 뺀 모든 소유물을 붙인다고 하 셨습니다. 그때부터 욥에게 비보가 연하여 들이닥쳤습니다. 이중삼중, 설상가상(雪上加霜),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소식들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이 맏형 집에서 잔 치를 하다가 돌풍에 기둥이 무너져 모두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때 욥은 어떻게 했을까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를 비롯한 여러분 중에 아들 일곱, 딸 셋은 고사하고 자식 하나만 불의의 사고로 죽어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감사의 예 배를 드릴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성경 보면서 “욥 같은 인내의 신앙 주시옵소서”하고 쉽게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욥은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를 깎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내가 모태에서 적신(赤身)으로 나왔은즉 그대로 적신으로 돌아가리라. 주신 분도 여호와시 요, 취하신 분도 여호와시라.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라.” 하며 입으로 범죄하지 않고 원망치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내가 두려운 마음으로 신앙생활했고, 십일조, 헌 물 다 바쳤는데, 하나님 해도 해도 너무 하십니다.” 했을 텐데 욥은 “하나님의 이름은 영광 을 받으실 뿐”이라 고백하며 어리석게 범죄치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바로 이처럼 마음을 완전히 비우신 분이었습니다(빌 2:5-6). 하나님과 동등(同等)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우리 죄 때문에 영광 다 내놓고 빈 깡통이 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하며 절대 순종하셨습니다. 마음에 검불(마른 나뭇잎) 하나만 한 것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내가 왜 십자가를 지고 죽습니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님은 자기를 완전히 비우셨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빈 깡통처럼 완전히 비어 있어야 주인이 그 안에 마음대로 물건을 담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욥은 성경을 통해 읽기도, 설교하기도 죄송할 정도의 사람입니다. 전설 속 인물이 아닌 실존했던 인물입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만큼 높이 평가하고 자랑하신 일은 신, 구약을 통틀어 없습니다. 욥은 최고의 순결한 인물, 티 하나 섞이지 않은 순전(純 全), 최고의 정직, 성결의 사람이었습니다. 마음과 생활에 흐트러짐이 없었고 좌우로 치우치 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봤습니다.
욥이 이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순수하게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이 정도 주겠지’ 하는 기복(祈福)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기복 신앙은 일이 잘 되면 감사하고, 안 되면 외면하는 조건부 신앙, 상대적 감사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절대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범사(凡事)에 감사해야 합니다. 범사의 감사는 시계추가 ‘똑딱’할 때마다 드리는 순간순간의 감사입니다. 일이 잘 돼도 감사, 안 돼도 감사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바로 그런 인물들이었습니다. 세계 최 고의 권력자였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신상(神像)에 절하지 않으면 7배나 뜨거운 풀무 불에 던진다고 위협할 때 “풀무불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설령 그러지 않으셔도 왕의 우상에는 절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단호하게 선언했습니다. 죽 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마음을 비운 것입니다. 조건부가 아닌 절대 감사입니다. 그 결과 느부갓네살 왕까지 회개시키고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믿게 만들었습니다(단 3장).
다니엘도 절대 감사의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으라는 왕명이 내려진 것을 알면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죽어도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을 봉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70,80세 살고 나면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믿는대로 거둔다는 것을 잊어 서는 안 됩니다.
욥의 마음에 검불 하나 없으니 사탄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실상 그의 마음속 슬픔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었습니다. 아들,딸을 다 잃었으니 천하가 동원돼도 위로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엎드려 예배드린 것입니다. 저도 목사로서 부끄러울 지경 입니다. 우리 교회에 15년 이상 새벽예배에 나와 앞자리를 지키던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런데 월남전 때 아들이 참전했다 전사했습니다. 그러자 그 권사님이 “하나님이 없다”며 원 망했습니다. 제가 말씀으로 권사님을 책망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군인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우다 전사했는데, 남의 아들 죽었을 때는 하나님이 없다고 안 하더니, 자기 아들 전 사했다고 하나님이 없다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권사님이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내가 교회에 헌금 많이 했으니 복받겠지’ 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 이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나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조건부가 아닌 절대적인 감사를 드려 보십시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내가 아낌없이 하나님께 다시 드립니다.”(대상 29:10-14) 하는 한마디 고백으로 다윗 왕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 쏟아졌습니까?

아내에게 버림받고, 친구들이 조롱하고, 게다가 자기 몸마저 악창(惡瘡, 악질적 피부병)이 나서 기왓장으로 긁고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도 욥은 마음이 변치 않았습니다. 건 강하고 부유할 때와 똑같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왜 이러십니까. 너무하지 않습니까. 아들,딸 다 죽이고, 재산 다 가져가고, 내 몸마저 이렇게 됐습니다. 아내도, 가장 친하던 친구들도 나를 버립니다.’ 하며 원망치 않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손을 딱 붙잡고 있는 욥의 모습을 보십시오. 바로 하나님의 손을 놓지 않는 것이 욥의 절대 감사의 조건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그분의 자손만대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늘과 땅의 원천(源泉)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는 완전히 죽을 수밖에 없는 지경이지만 욥의 마음만은 살아서 하나님의 손을 잡고 있는 그 모습을 눈으로 그려 보십시오. 마음속에 지도를 그려 보십시오. 여러분도 끝 까지 견디고 참고 인내하여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은 욥을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살 아온 생애를 재정비하고 남은 생애는 욥의 신앙의 길을 걷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성도가 되 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욥의 아내는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며 욥을 버렸습니다. 눈앞의 비참한 모습만 보고 하나님의 마음속 깊은 섭리를 헤아리지 못했던 어리석은 욥의 아내처럼 돼서는 안 됩 니다. 우리는 잔가지처럼 쉽게 타올라서는 안 됩니다. 쉽게 기뻐했다 쉽게 원망하며 감정에 따라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긍휼이 메말라서 우는 자와 함께 울지 못하고, 남이 어려움을 당할 때 ‘안됐다’ 말은 하지만 엎드려 그의 가정을 위해 기도도 해주지 않는 바보 같은 신 앙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복 받는 것, 부자 되는 것에만 관심 가져서는 안 됩니다. 재앙 과 환난을 만났을 때 욥처럼, 다니엘처럼,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하나님께 더 깊이 빠지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마지막에는 결국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환난을 만났다고 도망치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오히려 재앙 가운데 더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굴을 지나갈 때는 깜깜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 이 되면 굴을 빠져 나갑니다. 눈앞이 환하게 밝아옵니다. 욥이 바로 그런 신앙이었습니다. 그가 만난 환난의 굴 안에서는 어찌나 당황스럽고 참담했던지 세 친구가 찾아와서 그의 몰 골을 보니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털썩 주저앉아 목을 껴안고 울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7일 밤낮을 함께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위로해도 욥은 사람의 위로 대신 하나님의 섭리만 바라봤습니다. 친구들을 타이르고, 어리석은 아내에게도 손을 내밀며 욥은 마음속 오른손으로 하나님을 꽉 붙잡았습니다. 캄캄한 밤을 만났지만 열차들이 서로 연결되듯 하나 님과 연결되는 손을 꼭 붙잡고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놀라셨을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 님이 자랑하실 만하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자식이 속썩이고, 직장에서 윗사람, 아랫사람이 속썩여도 ‘제가 하나님 손 붙 잡게 하시려고 이런 축복을 주신 줄 믿고 감사드립니다.’ 하고 기도하십시오. 어떤 일,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하나님의 손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대로 감사하면 여러분의 자손 에게 큰 부요(富饒)의 축복이 임합니다. 부모를 통해 자손에게 주시는 은혜가 천대까지 간 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고 조건 붙이지 않아도 형통의 축복이 임합 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대로 “저는 절대 하나님 손 안 놓습니다. 욥을 통해 배웠으니 고통과 환 난과 괴로움으로 죽을 지경에 처해도 누가 놓으라고 해도 절대 못 놓습니다.” 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놀라셔서 소원대로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끝까지 견디고 참고 마음을 비운 욥에게 임한 축복을 보십시오. 모든 것에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의 딸들은 세계에 유명한 미인들이었습니다. 환난이 닥쳐올 때 독수리처럼 날개를 펴십시오. 오히려 거센 바 람을 이용해 유유히 높이 올라가는 독수리 같은 신앙을 가지십시오. 욥처럼 자기를 완전히 비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바라보며, 사랑하고 감사가 떠나지 않고 (골 4:2), 오른손으로 하나님의 오른손을 붙잡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내 모든 문제를 깨끗하게 풀어 주십니다. 티가 섞이지 않은 깨끗한 감사, 정직한 감사,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 사방 어디에서 보 든지 충만한 감사가 우리 평강 성도들의 가슴속에, 가정마다 임하실 줄로 믿습니다.
2006년 7월 23일 주일 3부예배 박윤식 목사 설교
이렇게 읽었다
김진영 성도(장년부 요셉선교회)

빈 마음을 채워준 풍성한 감사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집 제2권 ‘마음을 비운 절대 감사’가 지난 8월 6일 출간되자마자 교보문고 종교 분야 베스트셀러 3위에 올랐다. 출간 두 달이 다 돼가는 지금도 종교분야 베스트셀러에 계속 랭크돼 있다. 교회 밖 에 이미 광범위한 독자층이 형성돼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보문고 홈페이지에는 “매일매일 감사로 생활 하게 해주는 동기부여가 되는 책”, “근심과 걱정이 감사로 바뀌게 인도해주는 책”, “‘감사합니다’ 이 한 문장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깨닫는 순간”, “기독교인이라면 꼭 읽어보면 좋을 책!” 등의 독자 리뷰들이 올라와 있다. 이 설교집은 평강제일교회 강단에서 감사를 주제로 선포하신 스무 편의 설교 모음집이다. 1985년부터 2013년 까지 추수감사주일이나 맥추감사주일 등에 설교하신 내용이다. 많은 성도들이 이 20편의 감사 설교를 읽으며 ‘잃어버렸던 감사를 회복하여 삶이 다시 감사로 채워졌다, 구속사 시리즈가 인생의 지도라면 설교집은 나침반 이 되어 주었다’는 고백을 했다. 설교집의 내용 중 중 특히 마음을 울린 말씀들을 물었고, 그 말씀을 통해 받 은 특별한 은혜를 모았다.
'감사는 신앙의 열매' (1986년 설교)
본문에 나타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서, 신앙이란 나무에 맺히는 세 가지의 열매를 알 수가 있습니다. 신앙이라는 나무를 잘 가꾸어 병들지 않고 잘 자라게 하면 반드시 기쁨이 있고, 그 기쁨 속에는 또한 기도가 있고, 그 기도 속에는 감사가 연발하는, 이렇게 기쁨과 기도와 감사 세 가 지 열매가 맺게 되어 있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으니, 우리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변함없는 자연 법칙이며 하나님의 뜻이라고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하는 일에 회의감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1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나는 ‘일’이라는 감옥에서 산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 너무 억울하게도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기쁨 대신 한숨과 짜증만 늘어났습니다. 기쁨이 없으니 간절한 기도도 힘들었고, 내 삶에 감사가 부족한가 싶어서 자책도 해보고 벗어나려고 노력도 해 보았지만 조금 나아졌다가는 다시 그런 마음이 나를 삼켜버렸습니다. 지친 몸으로 잠들기 전 우연히 휘선설교집을 펼쳐보게 되었습니다. ‘항상 기뻐하 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너무나 익숙한 구절이지만,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이 말씀을 가 슴으로 받으며 내 마음에 평안이 왔습니다. 다시 지나온 세월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나를 돌아볼 여유도 없고 많은 눈물과 고통으로 얼룩진 시간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돌이켜보니 감사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시간이 많았 습니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하면 정말 평화로운 삶인데… 나는 왜 그랬을까? 나의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삶이 극한적으로 힘든 순간에도 정답은 언제나 말씀 안에 있었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정 신없는 시대를 살고 있어도 말씀만은 꼭 붙잡고 신앙을 지켜야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세 가지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다시 이 축복의 말씀으로 든든히 일어섭니다.
- 유승연 성도(미스바 성가대)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받아야 되느냐?” (2001년 설교)
‘작은 죽음을 조심하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죽음도 작은 죽음이 있나?’ 했습니다. 작은 죽음은 게을러 빠진 것입니다. 또한 작은 죽음은 불평하는 것입니다. 불만! 원망! 시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러한 것들이 모이고 모이면 사람은 죽습니다. 모든 생활에 죽는 연습을 자꾸 하는 것입니다. 작은 은혜를 소중히 여기시기바랍니다. 작은 죽음, 작은 암적 요소가 무서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누구 만날 때마다 “오늘 당신 만난 거 감사해요” 하세요. 어머니가 만든 만둣국, 떡국이 얼마나 맛있습니까? ‘어머니가 나 때문 에 그 추운 겨울날에 부엌에서 만드셨구나’ 하면서 그 속에서 감사하는 길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절 대 망함이 없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 말씀을 읽는 내내 ‘너무나 당연한 진리의 말씀이고 잘 알고 있는 말씀인데 왜 실제 삶 속에서는 작은 죽 음을 매일 매일 반복하고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매 순간 작은 은혜를 소중히 여기며 삶을 살 수 있을까?’ 하 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 그런 삶을 간절하게 살고 싶습니다. 익숙한 습관에서 나를 바꾸는 것이 결코 쉽 지 않다는 것을 지난 삶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 때문이야’ 하며 남 탓하는 마음을 줄이고, 대신 “‘다시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말하는 감사한 하루를 살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작은 죽음을 깨달을 때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회개 기도를 드리는 삶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많이 달라져 있을 거라 믿습니다. 나의 삶이 그렇게 변해야 당당하게 내 딸과 남편에게 작은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함께 감사하면서 살자고 얘기할 수 있겠죠? 하나님께서 그런 은혜를 허락해 주실거라 믿 습니다. 아멘.
- 나애순 성도(5대교구)
'나도 돌아온 한 사람 같이' (1988년 설교)
돌아오지 않은 아홉 명에게는 정당한 변명이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병이 낫거든 돌아와서 사례하라, 감 사하라, 찾아뵈라’ 하지 않았단 말입니다. ‘주님 말씀대로 제사장들한테 가서 보이기만 하면 될 거 아니냐? 약 속대로 이행했으니 할 것 다 했다’는 것입니다.‘십일조 꼬박꼬박 바쳐, 감사헌금해, 더 바칠 게 뭐 있어?’ 그 럴 수도 있겠죠. 돌아오지 않은 아홉 명에게도 예수님께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없지 않았죠. 그 러나 그 감사가 발길을 예수님 앞으로 돌이킬 만큼 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한 믿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언 어를 넘고 계약관계를 넘어 참 하나님께 대한, 뜻에 대한 정, 사랑이 있어야 될 텐데 그 아홉 명에게는 없었 다는 것입니다. 돌아온 그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즉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 다. 제사장 보다도, 사회 복귀 수순보다도 먼저 예수께 돌아와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겠다는 선택.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장면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고치신 열 사람의 문둥병자 중 사마리아인 한 명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했던 사건을 다루고 있 는 이 설교에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홉 명의 문둥병자와 같이 저도 간구에는 적극적이었지만, 감사에는 소극적이었던 모습을 발견하고 회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과의 관계가 계약 관 계처럼 변모됐기 때문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휘선 설교집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기회를 주시고, 절대 감사를 체험하게 해주셨습니다. 저에게 구속사 시리즈가 옛날을 기억하게 하 고,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게 하는 통로였다면, 휘선 설교집은 아버지(또는 어른)로부터 어떻게 사는 것이 올 바른 삶인지에 대한 해답을 얻는 통로였습니다. 처음에는 기존에 선포된 설교들의 정리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막상 읽고 나니, 휘선 설교집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시대를 반영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우리가 길을 잃을 때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은 존재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구속사 시리즈라는 지도와 휘선 설교집이라는 나침반을 통해 살아가고자 결심했는데, 저는 이 자체로 벌써 감사하게 됩니다.
- 김진영 성도(장년부 요셉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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