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 발간사 / 003

  • 1985년 12월 25일 수요예배
  • 나의 갈릴리는 영화롭다 ㆍ 사 9:1-7 / 008

  • 1987년 12월 25일 성탄예배 
  • 예언 성취의 거룩한 별 ㆍ 민 24:17, 마 2:1-12 / 026   ⏵  ⏵  ⏵ 

  • 1990년 12월 23일 주일 3부예배 
  • 높으신 하나님이 허리를 굽히시고 ㆍ 시 113:1-9 / 048   ⏵  ⏵  ⏵ 

  • 1992년 12월 25일 성탄예배 
  • 예루살렘이 온통 술렁거렸다 ㆍ 마 2:1-12 / 070  ⏵  ⏵ 

  • 1994년 12월 25일 성탄예배 
  •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의 축복 ㆍ 눅 2:22-35 / 088  ⏵ 🎥

  • 1995년 12월 25일 성탄예배 
  • 하나님의 굶주림과 인간의 평화 ㆍ 마 2:1-23, 4:2, 21:18, 막 11:12, 요 4:6-7 / 104

  • 1996년 12월 24일 성탄전야예배
  • 내 자신이 신령한 베들레헴 ㆍ 미 5:2 / 124

  • 1998년 12월 25일 성탄예배 
  • 성탄의 첫 목격자 ㆍ 눅 2:8-20 / 136   ⏵  ⏵  ⏵ 

  • 1999년 12월 25일 성탄예배 
  • 우리들의 성탄절은 ㆍ 마 2:1-12 / 162   ⏵  ⏵  ⏵ 

  • 2001년 12월 23일 주일 2부예배 
  • 빈방을 준비하면서 기다립시다 ㆍ 눅 2:1-7 / 188  ⏵  ⏵ 

  • 2001년 12월 24일 성탄전야예배 
  • 탄생 사건이 보여 주는 예수이심의 증거 ㆍ 눅 2:1-20 / 210  ⏵ 🎥

  • 2005년 12월 25일 성탄예배 
  •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심(또 다른 이름) ㆍ 사 9:6-7 / 228   ⏵  ⏵  ⏵ 

  • 2006년 12월 24일 주일 2부예배 
  • 천군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전한 성탄 메시지 ㆍ 눅 2:1-20 / 256

  • 2007년 12월 25일 성탄예배 
  •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ㆍ 마 1:18-25 / 282

  • 2008년 12월 25일 성탄예배
  • 큰 기쁨의 좋은 소식 ㆍ 눅 2:8-20 / 306

  • 2009년 12월 20일 주일 2부예배
  • 흑암과 사망의 그늘진 백성에게 친히 보이신 임마누엘의 징조 ㆍ 사 7:1-14, 마 1:22-23 / 334

  • 2009년 12월 25일 성탄예배
  • 자기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고 성육신하신 구주(성탄의 본질) ㆍ 눅 2:8-14, 요 1:14 / 354

  • 2010년 12월 22일 수요예배 
  • 주님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마음 ㆍ 눅 3:1-6, 사 40:3-5 / 386

  • 2010년 12월 25일 성탄예배
  • 첫 번째 성탄절의 이스라엘 사회와 종교의 실상 ㆍ 말 3:1-6 / 404

  • 2011년 12월 25일 성탄예배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ㆍ 말 4:1-3, 요 3:16 / 432

  • 2013년 12월 25일 성탄예배
  • 거룩한 예수 탄생의 신비 ㆍ 마 1:21-23, 요 1:1-14 / 458

설교

2023년 12월 13일 참평안(champyungan.com) 생명의 양식

1992년 12월 25일 성탄예배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 설교

(휘선설교집 제3권 「큰 기 쁨의 좋은 소식 성탄」에서 전재)


예루살렘이 온통 술렁거렸다



마태복음 2:1-12 ”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 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 라 하니 3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 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5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 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 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10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 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성탄의 복된 소식으로 지구촌 전체가 복된 계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죄와 죽음의 음침한 골 짜기에서 신음 하는 억조창생(億兆蒼生)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 위에 탄생하신 날이기 때문에, 이날은 인류 전체를 위한 기쁨의 축제인 동시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양을 드려야 할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번째 성탄을 전하는 천군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 중에 평화”라고 노래했던 것입니다(눅 2:13-14).


땅에서는 기쁨과 평화가 정착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와 시편 기자는 만인 간의 구세주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시는 메시아가 어떠한 사명으로 오시는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이사야 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시16: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그런데 본문 3절을 볼 때,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동한지라’는 헬라어 ‘타 랏소’(ταράσσω)로, ‘술렁거렸다’라는 뜻입니다.

 주위를 시끄럽게 하는 소리나 소동하는 일들은 많은 사건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꽹과리와 어우러지는 농악 소리가 울릴 때나 또한 수산 시장에서 입찰할 때 보세요. 얼마나 요란합니까? 위급한 환자를 싣고 달리 는 앰뷸런스 소리, 대형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서 몰려드는 소방차 소리는 왠지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과속 하던 자동차가 급정거하는 소리 한번 들어보세요.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합니다.그런데 딸만 네다섯 낳은 가정 에서 아들 낳았다는 소식을 들어보세요. 가족과 친척은 물론 동네가 시끄러울 정도로 술렁거리기 시작합니다. 대학 입시에 두 번 떨어진 삼수생이 명문대학교에 합격해 보세요. 가정뿐만 아니라 모교와 동네 까지 술렁거 립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하면 나라 전체가 술렁거립니다. 우리나라가 36년 동 안 일제의 쇠사슬에 매 여 있다가 1945년 8월 15일 하나님의 주권적인 기적의 역사로 연합군의 승리와 함께 해방을 맞이 한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크고 작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얼마나 술렁거렸습니까?


본문을 보면 ‘온 예루살렘 천지가 소동했다’고 했습니다. ‘소동하다’라는 동사의 문자적 의미는 ‘뒤흔들다, 흥 분케 하다, 괴롭게 하다, 요동케 하다’ 등으로 사전에 그해 석이 나와 있습니다. 구약 성경 에스겔 32:2를 볼 때 “인자야 너는 애굽 왕 바로에 대하여 애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열국에서 젊은 사자에 비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 큰 악어라 강에서 뛰어 일어나 발로 물을 요동하여 그 강을 더럽혔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 ‘요동하며’는 헬라어 ‘타랏소’에 대응하는 히브리어 ‘달라흐’(ַָּל ח ד )를 사용하여, 악어의 위력으 로 꼬리를 흔들어 물을 요동케 하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조주요, 생명의 구주요, 영생의 주가 되시는 메시아가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살리러 이 땅에 오셨는데, 왜 온 예루살렘이 떠들 썩하게 소동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불의의 술렁거림


예수께서 나셨을 때 일어난 소동은, 기쁨과 환희에 차서 영접하는 소동이 아니라 참으로 무서운 소동이었습 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헤롯왕은 본래 에돔 사람입니다. 유대인과 핏줄이 다른데 유대인의 왕이 됐습니다. 유대인들은 혈통을 아주 중요시하기 때문에, 헤롯이 왕위에 있는 것에 대해 늘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헤 롯은 자신 의왕 위를 지키기 위해 처남도 죽이고 자기 아내도 죽였습니다. 심지어 자기의 몸에서 태어난 아 들까지 죽일 정도로 간교하고 악랄하기 짝이 없는 왕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하늘의 별을 보고 예루살렘으로 와서 헤롯왕한테 유대인의 왕으로 나 신이가 누구냐고 물어볼 때, 순간 침묵이 흘렀습니다. 헤롯왕 입장에서는 ‘내가 유대인의 왕이 아니냐!’ 했겠죠. 동방박사들이 볼 때 헤롯이 진짜 왕이 아닙니다. ‘창조주가 되시고 영생의 주가 되시며 역대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 그 왕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들이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지금 여기 도착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유대인 의 왕으로 나신


그분한테 경배하러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헤롯왕의 속을 뒤집어놓는거예요. 헤롯왕이 안색이 달라지면서 대제사장, 바 리새인, 서기관, 종교 지도자들을 다 불러와서 유 대인의 왕이 어디서 난다고 했느냐고 묻자, 그 들은 미가 선지자의 예언(미 5:2)을 대주었습니다. 

그래서 헤롯왕이 아기 예수를 죽여야겠다는 흉측한 마음을 품고 동방박사들에게 ‘찾아서 경배하고 돌아올 때 나한테 가르쳐주면 나도 가서 경배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데, 그 속이는 말을 동방 박사들이 믿고 그대로 하게 두시겠습니까? 그들이 유대 땅 베들 지 예물을 드리고 경배한 다음 돌아가려는 찰나에 하나님께서 ‘헤롯왕한테 가지 말라. 다른 길로 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다른 길’은 특수 노선입니다. 헤롯왕이 볼 때, 동방박사들이 올 때 가 됐는데 오지 않아요. ‘속았구나!’ 해서 베들레 헴 지경에 두 살 이하 의 사내아이들을 다 잔인한 게 죽였습니다.


마태복음 2:16-18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그 베들레헴을 생각해 보세요. 외아들 하나만 죽어도 온 동네가 곡성으로 진동할 텐데, 두 살이 하의 아들 낳 은 가정마다 가서 인정사정없이 아이를 난도질하고 창으로 찔러 죽였으니, 그 원한이 얼마나 사무쳐 있겠습 니까? 헤롯왕이 자기 자리를 뺏길까 봐 그걸 지키기 위해서, 피에 굶주린 사자같이 아이들을 잡아먹은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왕위를 위해서라면 어떤 피의 값도 마다하지 않는 헤롯왕이 가만있을 리가 없죠. 많은 군대 를 풀어서 서베들레헴 지경을 이집 저집 샅샅이 다니면서 수소문해 가지고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죽이 는 그 광경을 보세요.


온 예루살렘이 술렁거린 다른 이유는, 로마의 박해와 로마에 아부하는 헤롯왕의 폭정 밑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당시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지를 볼 때 메시아가 반드시 오시는 데, 그분이 오시면 어둠의 밤은 사라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의 나라가 형성된 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믿고 있었습니다. 밥 먹을 때나 자고 일어날 때나 항상 ‘메시아가 언제 오실까’ 생각 할 정도로 메시아 대망 사상이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 지자 말라기가 예언했죠.


말라기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 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 오시기 400여 년 전에 말라기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말씀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메시아가 오시기 직전에 엘리야가 먼저 온다는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엘리야의 사적을 연구했습니다. 엘리야는 말라 기보다 약 450년 전 사람입니다. 말라기 이후 예수님 오시기까지의 기간 약 400년을 합하면, 엘리야 때부터 예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실 때까지 약 850년입니다. 그런데 그 엘리야 선지자가 온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사명을 다하고 마지막에 약이나 먹고 병 낫기 위해서 치료하다가 무덤에 파묻혔다면, 무덤 앞에 가서 언제 무덤이 빠개지나 하고 전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열광 기하 2:11 말씀을 볼 때, 불만과 물수레가 내려 와서 하나님의 권능의 바람으로 엘리야를 영육 간에 하늘나라로 데리고 올라가서, 이 땅에 있 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아를 기다리되, 메시아 오시기 직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된다고 말라기 가 예언했기 때문에, 먼저 엘리야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렇게 100년이 가고 200년이 가고 300년, 400년이 지나도 오지 않 았습니다.그런데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이스라엘을 향해서 준엄한 심판의 말씀을 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면서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 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라고 했습니다(마 3:2, 10).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엘리야가 온다고 했기 때문에 엘리야가 와야만 예수님이 오시는데, 누가복음 1:17 말씀을 볼 때, 바로 말라기의 예언대로 세례요한 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왔다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17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 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이것은 영적인 문제인데, 육신적으로만 생각하는 당시 유대인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이 그것을 알겠습니까? 그 러니까 주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훈련받아서 나가서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외칠 때, 종교 지도자들이 ‘너희 선생이 우리가 맞이할 메시아 같으면, 그보다 먼저 온다고 한 엘리야가 언제 왔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제 자 들이 처음 듣는 말이라, 대답을 못하고 그냥 쫓겨 왔습니다. 예수님의 눈치를 슬슬 보면서 ‘선생님, 말씀 증거 하니까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온다고들 하는데, 엘리야가 누굽니까?’ 여쭤 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 이 ‘엘리야가 벌써 왔다. 세례 요한이 엘리야가 아니냐!’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엘리야가 모든 율법과 선지자와 예언을 다 맡아서 사명을 끝낸 다음에 메시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오시는 그 순서를 말 씀했습니다.


마태복음 11:13-14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찐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태복음 17:10-13  “제자들이 묻자와 가로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 까 1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 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너나 나나 똑같지, 뭐. 네가 별수 있냐?’라는 식으로 임의로 대 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제야 세례 요한이 엘리야인 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19 이하 말씀 볼 때, 세례요한이 엘리야인 줄 몰랐던 이스라엘 백성은 약 850년 전에 올라간 엘 리야가 와야만 메시아가 오시는 줄 알고,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 인지, 엘리야인지, 선지자 중 하나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어서 그들의 대표를 뽑아서 세례요 한에게 가서 물어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때 세례요한이 ‘나는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라고 했습니다. 이 이치를 알지 못하니 아직 때가 멀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 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 되 아니라 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누가복음 3:15 말씀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례 요한을 보고 ‘혹시 이분이 메시아인가?’ 심중에 의논했 다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위대하기 때문에, 오신다고 한 그리스도가 아닌가 심중에 의논할 정도였던 것입 니다.


누가복음 3: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고 부르는데, 구주가 어디에 오셨습니까?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은 나이가 많고 어머니 마리아는 젊었습니다. 만삭이 돼 가지고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 명령에 따라 베들레헴에 와서 이 거리 저 거리 헤맬 때, 생각해보세요. 아기가 쏟아지려고 합니다. 걸을 수가 있습 니까? 여관방이 있습니까, 하숙방이 있습니까? 있어도 없다고 거절할 판이죠. 두 사람 옷 입은 꼴을 볼 때 허름하기 짝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사 관이 없다고 한 것은 여관방이 없었다는 뜻입니다(눅 2:7). 그래서 아기 예수를 짐승의 밥통, 구유에 뉘었습니다. 


2천 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무지해서 아기 예수를 맞이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짐승 밥통에 다 놓았는데 ‘기 쁘다 구주 오셨네’ 한다는 것은, 뜻을 깨닫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그렇게 불렀다 면 용서해 달라고, 믿음으로 메시아 되시는 예수님이 내 마음에 탄생하시기를 바란다고 기도해야죠. 방이 있 냐고 묻는다면 ‘제 마음을 여관 삼아서 여기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하는 믿음으로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해야 죠. 요한복음 1:11 말씀처럼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않았다’고 하는 그러한 입장에 있으면 되겠 냐 그 말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베 들레헴에 천번 만번 탄생하셔도 우리 마음 가운데 한번 탄생 못 하신다 면 우리는 영적으로 순간 이방인이 되는 것입니다.



기쁨의 술렁거림


아기 예수가 나시므로 베들레헴을 중심한 온 유대 땅이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소동 대사’입니 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인간들에게 오 셨기 때문에 술렁거릴 수밖에 없죠. 사람이 죄지은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에 대한 기록 중 마태복음 1:23 말씀을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 라”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사야 7:14에 있는 예언의 성취입니다.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사람들 사는 세상에 오신 것이 성탄입니다. 얼마나 큰 기쁨의 축제인 데,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했는데, 이걸 모르고들 성탄절을 맞이하고 있으니,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맞아들이기 위해서 떨고 술렁거려야 될 절기인데,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을 통해서 오신 그 거룩한 예수님을 도리어 죽이겠다고 살의(殺意)를 품고 있는 일국의 왕! 그 밑에 조정 백관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 기쁨의 축제로 술렁거려야 될 텐데 악의에 찬 술렁거림이었습니다.


어둠 속에 빛이 왔기 때문에 온통 술렁거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두움은 밤을 의미합니다. 잠언 7:9에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밤은 고요하고 적막합니다. 캄캄한 밤에는 일할 수 없습니다. 뭐가 보여야죠. 한 줄기의 빛도 없습니다. 죽음의 잠을 자고 있던 인류에게 새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영적으로 술렁거리지 않을 수가 없는 일 입니다. 생명은 움직이게 하며 소동하게 하는 것 입니다. 분명히 요한복음 10:10 하반 절을 볼 때 예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 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이 있기에 술렁거림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면서, 여러분의 생활 속에는 어떤 술렁거림이 있습니까? 성탄의 대목 을 노리는 장삿속으로 술렁거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연말 보너스 때문에 마음이 술렁거리고 있습니까? 그것 도 아니면, 선물을 주고받는 일 때문에 마음에 부담이 있는 술렁거림이 있습니까? 제가 묻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물으신다면 거짓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심장 폐부, 심혼골수를 찔러 쪼갤 정도로 다 아시는 분(요 2:24-25, 히 4:12)인데 어느 안전(案前)이라고 거짓말하겠습니까? 그런 술렁거림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 되신 그리스도를 맞이하여 여러분의 어두운 마음들이 밝아지고 죽음의 자리에서 새 생명으로 옮기는 술렁거림이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 예수 나신 밤’이 지금 내 심장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베들레헴의 탄생은 나와 관계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주 예수 나신 밤’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에 남이 알지 못하는 기쁨의 술렁거림이 충만해야 됩니다. 예수께서 동정녀를 통해 탄생하신 이 성탄의 실상을 우리는 진심으로 믿음으로 간직해야 됩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 1992년 성탄절만큼은 내 마음에 꼭 성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는 모두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 세계의 평화’는 교회가 모든 백성 앞에 제시해야 하는 영예스러운 사명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 인간의 평화를 생산하는 위대한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2:11을 볼 때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오늘 성탄을 맞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 이름 ‘예 수’를 환영해야 됩니다. ‘자기 백성을 죄악에서 건진다, 구원한다’는 예수님의 이름 뜻이 뭔지도 모르고 ‘기쁘 다 구주 오셨네’ 부르면 되겠습니까? 모두가 오늘 오신 아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수를 맞이함으로 기쁨이 충만하고 소망 찬, 썩지 않고 망하지 않고 흔들림이 없는 영원한 천국, 하늘 영광 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표적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입니다. 이 축복이 오늘 여러분과 가정과 직장, 친척, 아니 우리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말단 공무원까지, 모든 동포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평화스러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맞이하여 자손만대 축복받고, 모든 생활에 흐트러짐이 없이 규모 있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사는 가운데, 우리나라 전체가 예수 믿고 구원받는 놀 라운 역사의 계절이 세세 무궁토록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떠나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간밤에 명동을 비롯해서 불이 밝게 켜진 거리들 보세요. 참 성탄을 맞이 하는 백성의 모습입니까? 예수님이 오시는 과정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담이 죄지은 후로부터 메시아가 이 땅에 오 실 때까지 약 4천 년이 넘도록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 마음을 표현하시는 과정을 보세요. 자식이 집을 나갔을 때 아버지나 어머니는 발을 동동 구릅니다. 누구한테 말을 못 하지만 애간장이 녹는 듯한 그 아 픔 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적이 있어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인간에게 우주 만물을 다스리고 주관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창 1:26-28).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 과를 따먹는 죄를 두 번도 아니고 단 한 번 범하므로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게 됐고, 그 결과 인간들이 영생 복록의 세계를 떠나 처참하게 땀 흘리고 눈물 흘리고 고생하면서 속고 살다가 무덤으로 가게 됐으니, 그걸 막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심장을 빼서 친히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오게 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은혜와 진리가 충만케 오신 그분(요 1:14)을 모두 진심으로 맞이 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성탄절 보다도 1992년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마지막 때, 우리에게 밝은 소망을 안겨주시는 아기 예수 앞에 무릎 꿇고 경비 하면서서, 다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섭섭하게 하고 예수님을 외면하는 일이 없도록, 주안에서 잘 믿고 모든 생활에 승리하다가 하나님 앞에 안기는 산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천 년 전 예루살렘에 엉뚱하게 이방 사람, 별 보고 점 치는 점성가인 동방박사들이 찾아와서 헤롯왕한테 ‘유 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누굽니까?’물어볼때에, 기뻐해야 될텐데 살기가 등등한 나머지 애꿎은 두 살이 하의 사내아이들을 처 참하게 다 죽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중에 그렇게 형제들을 미워하고, 내 편이 아니면 남의 편은 저주받기를 바라는 마음 가진 사람이 있겠습니까마는, 오늘날까지 산 생애를 돌아볼 때에 순간이라도, 손톱만큼이라도 싫어한 사람, 미워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오늘 주시는 말씀으로 그러한 마음을 다 제 거해 주시고, 진실로 주의 사랑으로 따뜻하게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하 겠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을 때 헤롯왕과 예루살렘이 온통 소동했다고 했습 니다. 그것은 불의의 소동이었지만, 1992년에 전 세계가 맞이하는 성탄절만큼은 불의의 소동이 아니라 아기 예수를 학수고대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맞이하면서 환희에 찬 기쁨의 술렁거림이 충만한 축복의 역사가 있기 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 하셨으니, 우리 교회와 가정과 직장마다 화목이 충만하고 평화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대한민국에 화목이 필요합니다. 평화가 필요합니다. 각 정당에게, 모든 통치자들에게, 공무원들에게 아기 예수가 임재하셔서 평화의 마음, 기쁘고 즐거운 마음, 축제의 마음을 허락 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반드시 대한민국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살림이 잘될 줄 믿습니다. 감사 합니다.


이렇게 읽었다

성탄설교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성탄

글_이보라 기자

참평안 21년 1월호






해마다 화려한 축제로 보냈던 성탄절이 2020년만은 코로나 사태 속에 고요하게 지나갔다. 하지만 성탄절의 본질에 있어서는 그 어느 해보다도 진실한 성탄을 맞이했다고 확신한다.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휘선 설교 집 제3권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성탄’이 있었기 때문이다.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가 50여 년간 강단에서 선 포한 설교 가운데 성탄을 주제로 한 21편을 모아 엮은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교보문고 종교분야 베스트셀 러 1위에 올랐고, 발간된 지 한 달이 지난 현재 4,377권(1월 18일 기준)이 판매돼 여전히 베스트셀러에 올 라 있다. 교보문고 홈페이지에는 “예수님이 오신 성탄에 대해 이렇게 사실적으로 기록한 책은 처음이다”,“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성탄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책”, “마치 2천년 전 성탄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것 같다는 말이 정말 실감 난다”, “성탄절 최고의 선물”, “성탄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먼저 사랑임을 눈물 겹도록 느낄 수 있다” 등의 독자 후기들이 올라와 있다.



“오늘날까지 모르고 예수님을 건성으로 믿었는데,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서 진정으로 예수님이 제 마음속에 오셔서 거룩한 성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근심 걱정하지 않고 주님만 모시고, 바라보고 살겠습 니다. 주의 말씀으로 풍부하게 해 주시고, 주의 명철과 지식과 총명과 믿음과 은혜를 전수해 주셔서, 주와 같이 살고 주님이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주 안에 있는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삶에 하나님께서 한 번만 권면의 축복, 권고의 축복을 해 주시면, 역사가 달라질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 휘선 설교집 제 3권 380쪽 중


정말 예수께서 이 땅에 천 번 만 번 나셔도, 내 마음에 한 번 탄생하시지 않는다면 끝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시간은 내일, 모레밖에 안 남았습니다. 준비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마음의 방을 준비하지 않 고, 예비하지 않고 불도 밝히지 않고 있다가 “방 있습니까?”할 때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이 말씀 주실 때 제발 마음을 굳게, 강퍅하게 하지 말고 융통성 있게, 부드럽게 하시기 바랍니다.

- 휘선 설교집 제3권 220쪽 중


독자 민영란 권사는 이제야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탄생이 내 마음에도 이뤄졌음을 느꼈다고 고백했 다. “목차를 펼치니 제일 먼저 ‘빈방을 준비하면서 기다립시다’라는 설교가 눈에 들어왔어요. ‘빈방을 어떻게 준비하라는 거야?’ 하면서 읽기 시작했죠. 그런데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면서, 오래 참으시며 깨닫고 돌 아오기를 끝까지 바라시는 하나님의 먼저사랑이 너무나 가슴 절절하게 느껴졌어요. 너무 죄송하더라고요. 이제서야 이 말씀을 깨닫는 게… 더디 깨닫고 내려가는 엠마오의 제자같이 미련하고 늦었구나. 하지만 이번 성탄절만큼은 배운 성탄이 아닌 처음으로 ‘진짜 성탄’을 맞이한 것 같아요. 신앙생활 18년 만에 주시는 깨 달음이었습니다.”



독자 신세희 성도는 “지금까지 크리스마스는 그저 친구들하고 보내는 날이었는데, 이 책에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천번만번 나셔도 내 마음에 한 번도 안 나시면 끝나는 거 아니냐”고 하신 말씀을 읽는데, 순간 마 음이 철렁했어요. 내 마음속에 빈 방을 계속 두드리셨는데 여태 단 한 번도 빈 방을 못 내드리고, 찾아오신 예수님을 문전 박대한 것 아닌가 생각하니 너무 속상하고 죄송했죠. ‘그동안 내가 인간적인 크리스마스에 찌 들어 있었구나’ 가슴 깊이 회개하고, 20일 작정 새벽기도를 드렸어요. 28년 간 예수님을 영접해야 할 마음의 구유에 세상 것들로만 가득 채운 시간들을 회개하고, 이제는 축제가 아닌 예수님의 고난과 슬픔을 생각하는 성탄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더 나아가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저도 낮은 곳으로 가 잠 언 11장 25절과 디모데전서 6장 18절 말씀의 ‘돕는 자’가 되어 주위의 힘 듦을 돌아보고 봉사와 기부 같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목표도 생겼어요.”라고 고백했다.



독자 김혜지 성도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와도 신앙의 본질인 ‘예수님’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정확히 누구신가’라는 물음에 답하지 못했고, 왜 성탄절과 고난주간을 기념하며 눈물지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헵시바에서 신앙생활하면서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즈음에 이 설교집을 통해 큰 도움 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탄절에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엄동설한에 누울 자리 없이 태어나시 고 배고파 우는 아기 예수님을 통해서 나의 고통과 슬픔, 아픔을 위로받게 되었고, 이제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고, ‘나를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게 해 달라’는 비전까지 품게 됐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19로, 직장과 가정과 학교와 개인들의 여러 사정으로 고통 받는 분들이 이 책으로 큰 위로를 받고,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랑과 은혜를 선물로 받을 줄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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