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설교
참평안(champyungan.com) 22년 10월호
2007년 1월 30일 화요일 특별집회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 설교
제가 본문 신명기 32:7 말씀을 수십 번 얘기했습니다. 신앙생활 초기에 이 말씀을 볼 때 신기했습니다. ‘하 나님께서 왜 옛날 일을 기억하라고 하시고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고 하셨을까?’ 로마서 11:29에 “하나님 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라고 했는데, 그러한 분이 옛날을 기억하라고 하셨을 때는 무 슨 심오한 뜻이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명기 6:6-9 보시기 바랍니다.
목사님들이 성경을 연구한다고 하지만, 아담부터 노아까지 10대는 알겠죠. 노아는 인류의 시조 아담을 보 지 못했습니다.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아담과 56년을 동시대에 살았습니다. 아담이 죽은 연대와 노아가 태 어난 연대를 계산하면 딱 나옵니다. 노아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58년을 동시대에 살았습니다. 노아가 방주 지으라는 계시를 받은 것을 손자들에게 얘기 안 했겠습니까?
그런데 베드로후서 2:5 볼 때 경건한 자식이 있었습니까? 말씀을 전수했다면 경건해야 될 것 아닙니까. 말 씀을 받아야 될 것 아닙니까.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홍수로 내리치셨다고 했습니다.
종말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볼 때 말씀으로 만물이 창조되었고, 말씀으로 홍수가 왔고, 끝날 에도 말씀으로 불 심판이 옵니다. 세상을 멸절하기 위해서 불로 강수(強手)를 둔 것입니다.
옛날 같으면 아들딸 결혼시키기 위해서 부모가 일찌감치 비단을 준비해 놓습니다. 장롱도 맞춰 놓고 은가 락지, 금가락지도 미리 해 놓고 말이죠. 부모의 심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택하신 목적은 그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무한한 창조의 역사를 위해서입니다.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지만 당신의 형상을 입은 사람, 아담이 만물을 다스릴 때 하나님께서 보람이 있으신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아버지가 모든 것 을 주장하지만 나이가 50, 60, 70 되면 자식들에게 전수합니다. 자식이 일하는 것을 볼 때 자기보다 더 똑 똑해요. 예를 들어 말하면, 아버지는 영어 공부도 못 했지만 요새 아이들은 영어 공부합니다. 외국 사람과 영어로 대화하면서 물건을 파는 것을 볼 때 무척 대견하고 흐뭇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조는 하나님이 하셨지만 만물의 이름은 아담이 지은 것 아닙니까. 이름을 어떻게 짓나 보시려고 아담보 고 명하라고 하니까, 예를 들어 말하면 아담이 ‘소나무’ 하면 하나님이 너무 기뻐서 ‘허허’ 뒤에서 웃으셨죠. 밤나무는 밤나무, 해는 해, 별은 별, 달은 달이고 말이죠. 창세기 2:19에 기록돼 있잖아요.
이러한 근본을 모르고 믿는 척하는 것은 다 사기꾼입니다. 거짓말입니다. 구약의 역사와 연대를 모르고, 가 나안 정복할 때 여호수아가 몇 년 정복 전쟁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됐 습니까? 백성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삿 2:8-10). 깡그리 잊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서 심판하신 것, 아담부터 노아까지 10대, 셈부터 아브라함까지 10대, 2천 년 역사를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 원인을 알고 예수님이 오신 이유,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 우리를 구속(救贖)하신 이 유를 말씀해 줘야죠.

이번에 책 나오게 되면 각 교단의 신학 교수들한테 보냅니다. 20번 이상 수정했습니다. 책상에 4-5시간, 6 시간씩 앉아서 8개월 동안 여주 연수원에서 틈틈이 정리하고 연수원 한 바퀴 돌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세 요. 머리, 팔 다 잘라 팽개치고 몸뚱이만 가지고, 예수 십자가를 말씀합니까? 구약 때 미리 다 보여 주신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부지런히 가르치셨습니다. 역대의 연대를 생각해야죠. ‘아비에게 물으라. 그러면 설명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말씀을 전수해야 할 것 아닙니까. 전수받아야 자식들이 물어볼 때 답변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많이 스승이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약 3:1). 자기 자식들 공부시키고 편하게 살림하 기 위해서 속여서 목회한다고 말이죠. 사기꾼의 ‘사’자가 ‘속일 사’(詐)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내 백성의 영혼을 도적질한 목자를 가만두지 않겠다’라고 하셨습니다(겔 34:1-10). 앞으로 교인들한 테 말씀 안 가르치면 교회 부흥 안 됩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는 부흥합니다. 교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 전도사가 말씀은 안 가르치고 윤리 도덕적인 면에서 설교해 보세요. 교구 식구 늘지 않습니다. 말씀 은 무한한 거예요.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이 다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말씀, 신앙, 다 공백 기간입니다. 완 전히 사단이 파헤쳤습니다.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 듣기 전에 이러한 것을 알았습 니까? 금,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서 캐는 사람은 얼마나 힘이 듭니까. 허연 다이아몬드가 나오면 몇 달, 며칠 고생하고 땀 흘리고 허리 아팠던 것을 순간 다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TV에서 다이아몬드 캐 는 과정을 봤더니, 다이아몬드가 비싼 게 아니에요. 예수께서도 천국은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다고 하셨습 니다(마 13:44). 호미나 삽이나 곡괭이로 파서 캐야 될 것 아닙니까.
목사, 전도사, 잘 들으세요. 사기꾼 되지 말고 말이죠. 분명히 보혜사 성령을 받으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 신다는데(요 14:26, 16:13), 그러면 다 알아야죠. 교인들도 목사에 대해서 이렇고 저렇고 말할 필요 없습니다. 교인들은 목사를 위해서 기도해 줬습니까? 영권 목회를 위해서, 정말 훌륭한 목회자, 영혼을 살찌고 윤 택하게 해 주는 목회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금식기도 하고 울고불고 기도한 적 있습니까? 없잖아요. 내 남편, 자식, 아내, 가정을 살리는 영혼의 참목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도 안 해 놓고 뭘 설교 잘 못한다고 그럽 니까?
창세기 12장 내용은 아브라함이 받은 첫 번째 소명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두 번째 소명이죠. 성경 봤어 야 알죠. 공부했습니까? ‘다 아는데, 뭐’ 그런 마음이나 품고 마지못해 앉아 있다면 교만한 것입니다. 독사, 뱀 새끼들과 같습니다. 어린애가 말해도 들어야죠. 예수께서 하나님의 때와 뜻을 어린애들 입을 통해 찬송, 찬미로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교만한 자, 어른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애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옵나 이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눅 10:21). 나이가 많아도 신앙으로는 어린아이가 돼야 합니다. 성경 볼 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어린애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틀림없이, 반드시 천국에 못 들어 간다’고 하셨습니다(마 18:3). 어린애는 단순하잖아요. 순진하고 거짓이 없고 본 대로, 들은 대로 얘기합니다. 여러분이 먼저 성경 봐야 자식들에게 설명하고, 교인은 교인끼리 신앙 간증해야 할 것 아닙니까. 폭격 당 해서 큰 구덩이가 파였으면, 거기를 지나가려면 다시 지게나 리어카나 불도저를 동원해서 메워야 할 것 아 닙니까.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시기까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둘투둘한 땅을 다 메우고, 산을 넘고 강과 바다를 건너서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을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본문 창세기 18:17 볼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너한테 숨길 수가 없구나. 말하 고 가야지.” 하는 입장입니다. 18절 볼 때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얼토당토않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99세였습니다. 그러면서 19절 볼 때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사무쳐서, 인류의 시조 아담부터 2천 년이 지나서 아브라함한테 털어놓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다음에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 그 부르짖음이 커서 가 봐야 되겠다’ 해서 가 보시고 심판하신 것 아닙니 까. 아브라함이 ‘감히 티끌, 벌레만도 못한 제가 입을 벌려 하나님께 말씀드린다는 것은 참 무례한 것 같지 만 용서하시고, 제가 간구하겠습니다’ 하면서, 50명부터 시작해서 그 성에 의인이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 있어도 심판하시겠냐고, 자그마치 6번이나 중보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 아내, 딸 둘 합하면 4명이죠. 그리고 사위들과 사돈들이 있으니, 최소한 10명을 생각한 것입니다. 덮어놓고 10명을 얘기 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죠(창 18:20-33).
창세기 19장 볼 때 롯의 사돈들도 믿지 않고,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은 실없는 소리, 우스갯소리, 농담으로안 것 아닙니까(창 19:14). 성에서 안 나갔습니다. 롯의 처는 ‘설마’ 하고 뒤돌아보다가 즉사하고 말이죠(창 19:26). 오죽했어야 누가복음 17:32에 “롯의 처를 생각하라”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이 하버드대나 예일대, 무슨 대학교가 좋다고 공부하러 가지만, 거기 나온다고 영혼이 잘될 것 같습 니까? 그런 데서 영혼을 위해서 공부시키는 것 있습니까? 여호와의 도(道), 말씀이죠.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아브라함을 택하셨으면, 아브라함만 해당합니까? 갈라디아서 3:9에 믿음이 있는 사람은 아브라함과 똑같은 복을 받는다고 했는데, 여러분도 아들딸들, 손주들 있잖아요. 내가 믿고 알아야 가르치죠. 나이가 60, 70 되고 집사, 권사, 장로, 목사가 돼도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주워들은 얘기만 가르치니, 설득력이 있 습니까? 어릴 때는 100% 기억하지만 중학교 가면 60%, 고등학교 가면 70%, 대학교 가면 80% 잊어버립니 다. 목사 가정, 장로 가정, 권사 가정이 세상적인데, 평신도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합동 주류측 목사님이 여주 연수원에서 공부할 때 그래요. “30년 가까이 목회했지만, 이러한 것은 처음 듣 고, 참 놀랍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라고 말이죠.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가슴을 치고 복통 (腹痛)할 노릇입니다. 대상이 되는 사람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계시를 주시고 할 텐데 말이죠. 여호와의 도가 무엇이고 의와 공도는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걸 믿고 지키고 행해. 그래서 널 택한 거야.” 창세기 18:18-19 볼 때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을 확실하게 알 수 있잖아요.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돌이나 나무를 깎아 다듬어서 옥황상제 같은 우상을 만들어 팔아먹은 사람 아 닙니까. 먼저 거기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야죠(수 24:2-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그가 믿는 만큼 계시를 주시고, 또 아브라함은 깨달은 만큼 하나님 앞에 예배, 제단을 쌓고 말이죠. 신앙이 성장한 다음에 이 말씀을 하신 것이지, 택하자마자 “내가 너를 택한 이유가 이렇다”라고 하시면,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 말 씀이 믿어지겠습니까? 어느 정도 연수받은 다음에 말씀한 것이죠.
모세가 죽은 다음에는 그래도 여호수아와 갈렙 때문에 신앙이 전수됐지만, 갈렙이 죽고 여호수아도 죽은 다음에는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수 24:31). 그러니 하나님께서 내려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눈물입니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 때문에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습니까. 하나님께 서 “너희의 광야 40년 생활은 나의 근심거리다”(시 95:10)라고 하셨을 때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만큼 조마조 마하셨던 것입니다. 늘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자식이 사고 칠까 봐 부모가 집에서 걱정하고 염려하고 마음이 조마조마하죠. 참기름 쥐어짜듯이 마음을 쥐어짜고 말이죠. 그걸 아셔야 됩니다.
이런 것도 모르고 무슨 십자가 얘기만 합니까. 십자가가 그냥 나옵니까? 어느 집 가면 호박 나오고, 어느 집 가면 수박 나오고, 어느 집 가면 참외 나오고, 마지막 집 가면 먹음직한 것이 나온다 하는 식으로 십자 가에 관해서도 말씀해 줘야죠. 고린도전서 1:18에 ‘십자가의 도가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 습니다. 앞으로 성경을 깨닫지 못하면 목사들, 전도사들 다 쫓겨나고, 장로 구실도 못 하고 권사도 못 합니 다. 날이 갈수록 말씀의 때입니다. 이제는 그전같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초창기에는 ‘알아야 산다’ 했지만,그 말 가지고 통하지도 않습니다. 이제는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십니까. 기가 막힐 만하죠.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쳤으면 여호수아와 갈 렙이 죽어도 전수가 될 텐데, 부모들이 가르쳤습니까? 듣긴 들었는데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릅니 다. 하나님이 다시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런 진리의 내용을 깊이 알고 난 다음에 십자가의 도에 관해서 말 씀해야 교인들이 흥분하고 정말 감격스러워하고 믿고, 교회가 편안하죠.
제가 여기 오기 전에도 교직원들에게 “앞으로 성경 보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 나가라”고 했습니다. 아들이고 딸이고 간에 말씀을 제대로 전수해야 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딸들이 부모 대신해 서 말씀을 증거해야 될 텐데, 여호수아가 죽으니까 하루아침에 공백기가 온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늙을 것 아닙니까. 지금 전도 안 하고 말씀 가르치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병 들어 입원하면 교회 나오고파도 나올 수가 없습니다. 걷지 못하고 몸이 굳어지면 말이죠. 저도 아까 몸이 굳어서 한 시간 이상 목사님들이 비벼 주었습니다. 그분들도 얼마나 땀나고 힘들었겠습니까. 1년을 설교했 는데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지도 않습니까? 성경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과 이유가 나와 있 습니다. 마태복음 1:1 말씀만 봐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계보’라고 했잖아요. 그 러니까 아브라함을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믿지 않았다는 것, 죽을 때까지가 아니라 변화받을 때까 지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먼저 말씀을 깨닫고 알고, 자식뿐만 아니라 친척, 친구, 이웃들에게 말씀을 전해야 된다는 것, 막중한 책임이라는 것을 알면 전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사사기 2:8부터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명령을 여호수아한테 얘기 안 했겠습니까? 그러면 이스라엘이 그것을 전수했습니까? 여 호와를 알지 못했습니다!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믿겠습니까?
푸른동산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가 밤낮 이렇게 있을 것 같습니까? 다른 데로 떠나든가 아파서 입원 하든가 죽든가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있을 때 부지런히 공부해야죠. 전도 안 하잖아요. 그러면 다 죽습니다. 젊은 애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지 못해서 전수가 안 되면 어떡하겠습니까. 그저 허연 종이에 시꺼먼 글자로 보입니까? 가슴이 떨리는 얘기입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대로 부지런히 가르쳤으면 왜 여호와를 알지 못합니까? 이 공백 기간이 수백 년입 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역사, 노아의 역사, 홍해가 갈라진 역사,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창세기 15장 볼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한테 “네 자손이 이방 나라에 객이 되어 400년 동안 종살이한다. 그리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온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다음에 아브라함의 장수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4대 (代)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4대 만에 돌아오리라’ 하셨는데, 어떻게 4대가 되어서 돌아오는지 그 과정 에 대해 말씀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원고 한두 장을 두 시간 반 동안 증거하는데, 원고가 21장입 니다.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원고가 완성이 다 안 됐습니다. 쉽게 되는 게 아니죠.
족장들의 연대기, 횃불 언약의 정확한 4대 말이죠. 다른 사람의 책을 찾아봐야지, 저만 옳다고 하면 되겠습 니까? 옥스퍼드 주석을 봐도 100년을 한 세대로 잡았습니다. 풀핏 주석, 카일·델리취 주석, 호크마 주석, 박 윤선 박사 주석, 이병규 목사 주석, 그랜드종합 주석, 뉴톰슨 관주 주석, 위즈덤 종합강해 창세기 주석, 서 울말씀사에서 펴낸 창세기 강해, 1998년 도서출판 영문에서 나온 김영환 목사의 창세기 요약 강해, 통합측 에서 유명한 방지일 목사 창세기 강해, 2002년 경향문화사에서 나온 경향교회 석원태 목사가 쓴 것, 열몇 사람의 주석을 다 찾아봤는데 똑같습니다. ‘4대’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 없다는 것을 제가 말씀을 증거하면 서 지적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의심 없는 믿음
로마서 4:13, 16, 갈라디아서 3:6-9, 29 볼 때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의 믿음의 조상입니다. 어떤 믿음이 었습니까? 창세기 15:5-6 볼 때,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 없이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말씀의 뒷받침이 로 마서 4:19-21입니다.
그때 사라는 월경도 끊어지고 애도 못 낳는데, 하늘의 별을 보고 ‘네 몸에서 난 자식이 하늘의 별같이 많 을 것이다’ 하실 때, 말이 그렇지 아브라함이 나이가 84세인데 그 말씀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제 후계자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입니다’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아니다! 네 몸에서 난 자라야 네 후계자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여러분한테 앞으로 뉴욕에 큰 빌딩 두 개 갖게 될 거라고, 여러분의 아들들이 뉴욕에 큰 빌딩 서너 개 차 지하게 될 거라고 하면 믿겠습니까? 그 말 하는 제가 바보가 됩니다. ‘진짜 목사인가? 내 아들이 미국 대학 도 안 나오고 영어도 못하고 남의 집에서 종노릇, 종업원 하고 있는데 언제 벌어서 그걸 사냐’고 말이죠. 불가능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이 우리와 똑같은 생각이죠. 그러나 아브라함은 ‘네 몸 에서 난 자라야 후계자가 된다.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진다’는 말씀대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 라고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의’(義)로 인정하신 것입니다.
뉴욕 빌딩은 관두고 “올랜도의 큰 백화점이 당신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믿겠습니까? 돈 없고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데 어떻게 믿습니까.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 관계해서 낳는다면 모를까, 그나 마도 못 하는데 늘그막에 언제 애를 낳아서 손주 봐 가지고 자손을 낳고 낳고 해서 당대에 이룰 수가 있 습니까? 불가능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4장 말씀 볼 때 의심치 않고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의가 바로 그 것입니다. “명년 이맘때 돌아올 때에 네게 아들이 있겠다” 하니까, 장막에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웃었 습니다. 왜 웃느냐고 하니까 두려운 나머지 웃지 않았다고 하자 “아니다. 네가 웃었느니라.” 그러지 않았습 니까(창 18:9-15). 하나님이 다 아시는 분이죠.
우리가 아브라함 같은 믿음이 있습니까? 아브라함 같은 믿음도 없는데 날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을 어떻게 믿습니까. 부모로부터 전수받은 것도 없잖아요. 친구 따라 교회 나와서 비로소 아브라함을 알고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귀로 들은 예수를 믿습니다. 어째서 믿음의 조상인지도 모르고 믿으니 얼마나 한심합니까.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내용도 모르고 믿지 못하는데 십자가의 도 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무조건 믿으라고 윽박지르면서, 십자가 구속의 도리는 따지고 믿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무조건 믿어집니까? 2천 년 전에 골고다 언덕에 흘린 피는 벌써 말라 꼬드러진 지 옛날이고, 예수 님의 십자가 피가 흔적이 없잖아요. 고려 망할 무렵에 충신이 선죽교(善竹橋)에서 죽었는데 비가 오면 불그 스름하게 보인다면서요. 충신의 피는 말한다고 하죠.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러한 것도 없는데 믿어져요? 거 짓말로 믿지 마세요. 아브라함의 믿음, 아브라함의 신앙 아니면 십자가의 도가 믿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찬송할 때 ‘그 피가 맘속에 큰 증거 됩니다’라고 부르지만, 설교 들을 때 감격도 없고 감 사도 없고 마음이 뜨겁지도 않은데 무슨 예수의 십자가 피가 마음에 증거가 됩니까?
로마서 4:18에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설명하자면 일주일 이상 걸릴 겁니다. 나이가 100살이 다 됐는데 언제 낳아 가지고 길러서 장가보내서 손주 보고, 또 그 자식 들이 커서 언제 됩니까? 세월이 한이 없는데 말이죠. 그러나 19절 볼 때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 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모르지 않 았습니다.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찰떡같이 믿은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있다’, 가능하다는 것이죠. 확신을 가진 것입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내 질병 낫는다!’ 이렇게 믿어야 될 텐데 ‘낫겠지. 목사님이 기도해 줬으니까 나을 거야’ 이러고 말이죠. 본인이 믿어야 됩니다. ‘나을 거야’가 아니라 본인이 믿으면 낫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의, 아브라함의 공도를 알고 난 다음에 십자가의 도를 가르쳐야 믿을 수 있습니다. 그전에는 다 배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 말씀대로 자기 교만, 자기 거만, 자기 자랑, 앞서 기 좋아하고 아는 체하는 것도 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될 것 아닙니까. 주와 함께 죽고 주 안에서 예 수 믿는 믿음으로 산다고 했죠. 그 믿음으로 살아야 십자가의 도를 믿을 수가 있지, 배운다고 믿어지겠습 니까?
아브라함은 믿음이 없어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겠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100% 된다고 믿었습 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위대한 믿음 아닙니까. 우리의 믿음 의 아버지요, 조상입니다. 끝날에도 많은 사람 통해서 합니까? 그러면 싸움질해서 못 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라고 하지 않았습니까(눅 6:8, 11:17). 사무엘상 16:7 보세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진짜 믿는지를 아시는 것입니다. ‘믿습니다’ 한다고 해서 들으 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중심을 보시니까 아브라함이 진짜 믿거든요. 그래서 창세기 15:6 볼 때, 의로 인정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잘 믿을 수가 있느냐’ 해서 “나는 너와 친구야. 알았어?”(약 2:21-23) 하시 고, 아브라함이 기도하려고 하면 나타나서 말씀 주시고 말이죠. 시편 25:14에 ‘하나님의 친밀함, 하나님의 비밀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다’고 했지 않았습니까. 그런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을 왜 들먹거립니까? 할례는 어 떻게 되는 것입니까?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는 것이죠(롬 4:11).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 없이 믿는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한테 약속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후손이죠. 구속사의 뜻을 위해 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믿음의 레일, 믿음의 기차를 통해서 예수님을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이지만 엿장수 마음대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의 핏줄, 다시 말하면 레일로 기차를 보내서 예수님을 실어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후손의 약속’입니다. 후손을 통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가 오신다는 약속임을 밝혔죠. 마태복음 1:1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 계라, 계보라’ 하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의 여러 민족 가 운데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히브리 민족’, 그 뜻은 ‘강을 건너온 사람’입니다. 이제 구원의 씨를 아브라 함을 통해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 후손의 축복을 점점 구체적으로 계시해 주셨습니다. 단순히 아들만 주기로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창세 기 12:2 볼 때도 ‘아브라함이 장차 큰 민족을 이룬다’고 할 때, 자손이 약속돼 있잖아요.
창세기 12:7 볼 때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3:16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땅의 티끌, 먼지같이 많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4 볼 때 ‘약속의 후사는 집에서 길러온 몸종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몸에서 난 자’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저는 자식이 없습니다.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 제 몸종을 후사로 삼기로 했습니다”라고 하자 하나님께서 “아니다! 네 몸에서 난 자라야 네 후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이상 얼마나 확실히 말씀 합니까.
창세기 17:19 볼 때 약속의 후사는 첩의 아들이 아니라 본처 사라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육신적으로 사라의 몸종인 애굽 여자와 관계했는데 임신했습니다. 이삭보다 14년 전에 이스마 엘을 낳았습니다(창 16:16). 큰아들이죠. 이삭은 아직 없고 말이죠.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은 후사가 아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29-30 볼 때 ‘첩의 자식은 다 내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신령한 예루 살렘은 우리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갈 4:26).
그리고 자손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는데, 창세기 17:21을 보면 ‘명년(明年)에 돌아올 때 네게 아들 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밤잠 못 자고 성경을 1,800번가량 읽는 가운데서 다 뽑아낸 것입니다. 남 의 책자나 보고 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얼마나 복입니까.
그다음 창세기 18:9 이하를 볼 때 “기한이 이를 때 네게 아들이 있겠다” 두 번, 세 번 말씀하고 있잖아요.
까마득한 얘기죠. “언제 애를 배고, 언제 그 자식이 커 가지고 장가가서 손주 보고, 손주가 또 커서 자식을 낳고, 몇 년 가도 안 되겠다.” 그런 소리 하고 말이죠. 하도 믿지 못하는 바람에, 이사야서에 ‘하나님의 자민 (子民)을 순식간에 생산한다’고 말씀했습니다(사 66:8). 나라가 되려면 몇백 년 걸려야 되는데, 하나님은 순 식간에 만드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해가 돼라, 별이 돼라” 하신 대로 다 된 것 아닙니까. 말씀을 믿 으면 됩니다.
창세기 18:10의 ‘기한이 이를 때에’가 공동번역에는 한층 더 실감 나게 번역돼 있죠. “내년 봄 새싹이 돋아날 무렵”에 아들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4:18-21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위대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라도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 다고 했습니다(히 11:11). ‘미쁘다’는 것은 믿을 만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미쁘신 분입니다. 사도 행전 13:34, 디모데후서 2:11, 13, 히브리서 10:23 보세요. 참고로 적으세요. 로마서 3:3, 고린도전서 1:9, 고 린도후서 1:18, 데살로니가전서 5:24, 데살로니가후서 3:3, 디모데전서 1:15, 3:1, 디도서 1:9, 3:8, 베드로전서 4:19, 요한일서 1:9 그 이하도 없고 그 이상도 없습니다. 얼마나 좋아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왜 부르셨나?’ 하는 질문에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주권’, 혹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선택’이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8:19 볼 때 명확한 이유를 말씀하 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식과 권속, 그 식구들, 그 가족들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아직 아브라함의 자식이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도 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가족이 두 내외밖에 없는데 ‘권속들에게’라는 말씀이 믿어지겠습니까? “목사님, 제정 신으로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 아직 애가 없어요. 제가 60살이 넘었습니다. 월경도 다 끊어졌는데 어떻게 애를 낳습니까?” 그러면, 말한 사람이 멋쩍잖아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믿는 것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란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아내가 월경 끊어진 것 알고, 자기도 아내에게 가지 않습니다. 낙이 없다 고 했어요. 그러나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신, 믿을 만한 분입니다. 이제부터 그런 믿음 가지세요. 아브라함의 소명의 이유가 창세기 18:19에만 나타나 있습니다.
창세기 18:17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까 말씀했죠. 시편 25:14, 아모스 3:7, 요한복 음 15:15 적으세요.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이 ‘친구’라고 표현한 사람은 아브라함밖에 없습니다. 역대하 20:7, 이사야 41:8, 야고보서 2:23에 기록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친구, 벗 아브라함이 기도하니까 ‘야야야, 알았어’ 끝까지 듣지도 않고, 의도를 아시고 재까닥 응 답해 주셨습니다. 기도할 틈을 안 주셨어요. 하나님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을 경외하는데 진짜 믿음으로 경외합니다. 나다나엘처럼 간사가 없습니다(요 1:47).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 친구로서 계시를 받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특권을 받은 사람이에요. 엎드 려 기도하기 전에 바로 가르쳐 주시고 다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아요.
‘이 땅의 믿는 자들을 네 자손으로 만들겠다’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요한복 음 8장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이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들이 없어 대가 끊어지게 생겼는데도 장차 그 자손이 광대한 나라를 이룰 것을 미 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 때문 에 복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제가 뭔데 저 때문에 만인간이 복을 받습니까?” 그럴 것 아닙 니까. 믿기 힘듭니다. 참으로 최대, 최고의 언약입니다. 창세기 12:3, 22:18, 26:4, 사도행전 3:25, 갈라디아서 3:8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녀 신앙 교육의 중요성
그런데 우리가 꼭 한 가지 알 것은, 이 약속이 가정에서 말씀의 전수 사역을 통해, 자녀의 신앙 교육을 통 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부모들은 자식들을 제자 삼아서 사역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가정 이 작은 천국이에요. 얼마나 좋아요.
어떻게 신앙을 전수할 수 있느냐? 디모데전서 4:5에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진다’고 했죠. 자녀들에게 어떻 게 신앙을 전수할 것이냐. 말씀과 기도로 키워야 합니다.
자녀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구속사의 첫 관문을 열었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이미 자녀에 대한 신앙 교육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제자 삼아서 가르쳐야 됩니다. 디모데 후서 1:5 잊지 마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대물림한 디모데의 외조모 로이스와 친어머니 유니게를 보시기 바 랍니다. 외조모의 믿음, 눈물, 어머니의 믿음, 눈물이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눈물의 사람입니다(딤후 1:4). 감 사가 있고 감격이 있고 믿음이 있어야 눈물 나오죠. 디모데후서 3:14-17, 에베소서 6:4을 보세요.
하나님이 부모를 가정에 세워 주신 이유는 자녀들에게 말씀의 법도를 가르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말라 기 2:15에서 말씀하고 있는 ‘경건한 자손’을 보자는 것입니다. 경건한 자는 직장도 아니고 길거리도 아니고 어느 단체나 회사가 아니라 가정에서 나옵니다. 신명기 4:9, 11:19, 시편 78:4을 보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6:7에서 ‘부지런히 가르치며’는 원어적으로 ‘되풀이하여 거듭거듭 가르쳐서 교육시키는 것’을 말합니 다. ‘아버지, 나 귀먹지 않았어요. 알았어요’ 그래도, 되풀이해서, 거듭거듭 가르쳐서 아주 머리에 주입시키라 는 말씀입니다. 부모의 책임이에요.
잠언 22:6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자식이 늙어도 부모가 가르친 말씀을 떠나지 않습니다. ‘가르치라’는 것은 길들이지 않는 야 생마의 코를 뚫어서 고삐를 꿰어 주인에게 순종하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들이 죽는다면 누가 자녀를 가르칩니까? 사사기 2:7-10에 기록돼 있잖아요. 여호수아와 그 세대 사람이 다 죽고,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대물림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다음에 사사기 읽어 보면 얼마나 하나님 마음을 격동시키고 죄를 지었습니까. 사신 우상(邪 神偶像), 주색잡기(酒色雜技)에 빠지고 말이죠. 여러분 자식이 대학을 못 나왔어도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 보 세요. 대학 나온 사람보다 더 잘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여호와의 도는 일류 대학에서 가르치지 못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사랑할수록 훈계로 가르치고, 때로는 징계와 채찍, 책벌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집 입구 에 채찍이 다 걸려 있습니다. 대나무 같은 것인데 두 가닥입니다. 우리도 똑같이 만들어서 사업부에서 판 매합니다. 수천 명 떠들던 아이들이 조용해요. 원로목사가 때려 주라고 한 것을 들었거든요. 집에서도 그렇 게 공손해지고 말이죠. 맞기 전에 말 잘 듣겠다고 하더래요.
에베소서 6:4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라고 말씀 하고 있는데, 공동번역에는 “어버이들은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 계하며 잘 기르십시오.”라고 나와 있습니다. ‘훈계’(訓戒)라는 말을 해석하면 ‘고난을 통해 바르게 된다’는 뜻 입니다. 아이들에게 되도록 고난을 주라는 것입니다. 훈계를 따르지 않으면 징계도 있고 채찍도 있습니다. 징계는 마음을 새롭게 결심하도록, 교정하는 목적으로 처벌을 가하거나 고통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징계 의 동기는 사랑입니다. 잠언 13:24 보세요.
‘우리 자식 어떻게 길렀는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길렀는데 어떻게 때려?’ 그럽니다. 또 어떤 어머니는 자식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초장에 찍어 먹어도 비리지 않겠다’ 그런 소리를 하고, ‘눈 속에 집어넣어도 눈이 아프지 않겠다’고 합니다. 먼지 갖다가 눈에 집어넣어 보세요. 안 아픕니까? 아들딸 을 눈에 집어넣는데 왜 안 아파요.
‘초달’은 ‘매질할 초’(楚), ‘종아리 칠 달’(撻)입니다. ‘회초리로 볼기나 종아리를 때리는 일’을 말합니다. ‘근실 히’는 아침 일찍이, 인생 새벽에, 악한 습성이 형성되기 전에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말씀입니다. 원어로 보면 ‘아침 일찍’이라는 뜻이에요. 히브리서 12:5-6, 8을 보세요.
신앙생활에 꾸지람과 책망과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입니다. 아비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채찍질한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3:19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낳은 자식이 아니면 눈치 봅니다. 후처가 전처 자식들에게 뭐라고 할 수 있습니까? 남이 낳은 자식인데, 때리면 어머니라고도 하지 않고 “이 여자야!” 그러죠.
에베소서 5:13에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라고 말 씀하고 있습니다. 책망받는 것마다 마지막에 빛으로, 어두컴컴하게 마음이 상하고 괴롭고 답답하고 ‘저따위 가 뭔데 날 때려?’ 하지 않고 빛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고맙게 생각하죠.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의 어머니가 계모였습니다. 신앙이 좋았어요. 계모를 통해서 신앙을 전수받았습니다. 위대한 사람입니다. 성경으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징계가 필요한 이유는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시편 51:5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 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찰스 스윈돌(Charles R. Swindoll) 목 사는 “죄의 종으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아이의 속성대로 가만히 두면 강도, 도적, 흉악한 자식이 될 뻔했 다고 했죠. 잠언 22:15 볼 때 ‘아이들에게는 미련함이 얽혔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악 중에 출생했기 때문에 엉겅퀴같이 미련함이 엉켜 있다는 것입니다. 징계하고 때릴 때 엉겅퀴가 벗겨 진다는 거예요. 엉켜 있는 거미줄 같은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하나 다 떼어 내는 순간입니다. 부모 들이 그것을 알고 가르치면 되는 것입니다. “내 아들은 참 착해.” 그런 소리들 하지 말고 말이죠. 똥 가운데 사는 구더기같이 다 죄인인데 착하긴 뭐가 착해요? 로마서 3:10에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했죠. 죄악의 속 성을 가지고 그 몸에서 나온 자식들인데 뭐가 착해요. 엉겅퀴가 엉켜 있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내 딸, 내 아들만큼만 해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뭐라고 한마디 하고프지만 말해 봐야 ‘댁의 아들인가? 자기 딸인가?’ 하면서 괜히 알지도 못하고 그런다고 하겠죠.
잠언 22:15이 공동번역에는 “아이들 마음에는 어리석음이 뭉쳐 있다. 채찍을 들어 혼내 주어야 떨어져 나 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입니다. 원어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련한 것이 엉켜 있어서 채찍 을 가해야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공동번역 읽는 순간 체증이 다 내려갑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때리면 어머니가 부엌에 있다가 “왜 때려! 당신이 한 게 뭐가 있어? 이 아이를 내가 데리 고 들어왔어? 당신 자식인데 왜 때려!” 그러죠. 아이는 때려야 돼요. 그렇다고 죽일 마음 가지면 큰일 납니 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죠.
사람들은 ‘미운 7살’이라고, 7살 지나면 다 잘되는 줄 알지만, 성경 볼 때 그렇지 않습니다. 늙을 때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천 불, 2천 불 들고 여기 왔지만,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돈 아깝지 않죠. 비행깃 값 아낀다고 그냥 있어 보세요.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겠죠. 잠언 20:30, 23:13-14 보겠습니다.
매는 사람의 속에 깊이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잊어버리지 않죠. 채찍으로 때리면 사망의 음부에서 영혼을 건져 내잖아요. 서울 가서 바보같이 문자적으로 “성경에서 때려도 괜찮다고 했다더라.” 하면서 때리면 안 됩니다. 애를 막 때리라는 게 아니라 말씀으로 가르쳐야죠. 세 번 정도 가르치고 “네 번째는 회초리로 맞는 다.” 딱 경고하세요. 알았죠? 잠언 29:15 보세요.
‘임의로 하게 버려둔다’는 것은 원어로 볼 때 ‘울타리 없이, 아무런 제재 없이 동물을 방목함’이라는 뜻입니 다. 울타리도 없고 우리도 없습니다. 그렇게 기르면 어떻게 됩니까. 망아지 모양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다 도망갑니다. 자식이 그렇게 됩니다. 아이가 부모에 의해 억제되지 않고 하고픈 대로 하면 짐승처럼 제 멋대로 자란다고 했습니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치고 결국 집안이 망가집니다.
사무엘상 2:12, 29, 3:13 보면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불량자라고 했습니다. 깡패 모양으로 망종(亡種)이에 요. 엘리가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아들들을 불러서 “소문이 좋지 못하다. 그러지 말아라.” 하고 말 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가 아들들을 때릴 줄 아셨는데 안 때려요. 아버지 나이가 100살 가까운데 아 들들이 그 말을 듣겠습니까. 엘리가 아들들에게 채찍을 가할 줄 아셨는데 말로만 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 서 “너희 집안은 앞으로 노인이 영원히 없겠다”고 하시고 “왜 나보다 자식을 더 위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한날한시에 죽이겠다고 하신 예언대로, 사무엘상 4장 볼 때, 블레셋과 싸울 때 법궤를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었습니다. 그때 총사령관이 엘리 제사장인데 소식을 기다리 고 있었죠. 연락병이 전황을 설명하는데, 법궤를 빼앗기고 수많은 이스라엘 장정이 처참하게 죽었고 홉니 와 비느하스도 죽었다고 했습니다. 엘리가 그 말을 듣자마자 경련을 일으켜서 의자에 앉아 있다가 나가자 - 16 - 빠지면서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그리고 며느리가 해산하는 중인데 소식을 다 들은 다음에 ‘이스라엘에 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 해서 아이 이름이 ‘이가봇’이 되었습니다. 한날한시에 두 아들 죽고, 아버지 죽 고, 며느리 죽었습니다. 엘리가 아들들에게 매질을 안 했습니다. “소문이 좋지 못하다. 앞으로 조심하라”고 하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나님께서 “네 아들이 나보다 중해? 내가 말한다. 너의 아들들, 너희 집안의 죄, 어떤 제물로도 사함 받지 못한다!” 선언하셨습니다(삼상 3:13-14). 집에 가서 사무엘상 2:12-4:11 보면 이해 되실 거예요.
자녀 교육에 대해서 관심 가지세요. 머리 큰 자식들도 여러분의 아들딸들입니다. 말해야 돼요. ‘임의로 버려 두다’라는 뜻은 울타리 없이 방목하는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 제재가 없습니다. 부모의 근심거리입니다. 사 무엘상 2:22부터 보겠습니다.
사무엘상 2:22-25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2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 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24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 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25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데 ‘그러지 마라’ 하고 나서 몽둥이로 쥐어패야 될 것 아닙니까.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죽이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부모에게 자식 맡길 필요가 없습니다. 자격이 없어요. 26절 이하 를 보겠습니다.
목사님들, 잘 들어야 됩니다. 교인들이 바친 헌금 말이죠. 구약 때는 제물에서 헌금을 갖다가 제사장 집에 주어서 자식도 먹이고 길렀습니다. 그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너는 어찌하여 나보다 네 자식을 더 소중 히 여겨? 교회 제단에 바친 제물을 얻어먹고도 말이야!’ 똑똑히 아셔야 됩니다. 30절 이하를 보겠습니다.
그다음에 사무엘상 3:12-14 보겠습니다.
13절에 있죠? 아들이 잘못되면 채찍으로 때려서 금해야 될 것 아닙니까. 금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 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 예물로도 영원히 사함을 얻지 못한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사무엘상 4:2 보면 4천 명이 죽었고, 법궤를 빼앗기고, 보고를 들은 엘리 제사 장은 의자에서 자빠지면서 목이 부러져 죽었고, 며느리가 전령의 보고를 듣고 갑자기 해산하면서 “하나님 의 영광이 떠났다, 이가봇!” 그 말을 남기고 죽은 것 아닙니까. 자식들 잘 가르쳐야 됩니다.
잠언 19:18을 공동번역으로 볼 때 ‘아들에게 매를 들어야 희망이 있다’고 했죠. 그러나 애들을 들볶아 죽여 서는 안 됩니다. 따끔하게 혼내야죠. 옛날 우리 한국의 어머니들은 아들을 다듬잇돌에 올라가게 하고 바지 를 들게 했습니다. 딸은 치마와 그 안에 입은 고쟁이 같은 것을 들죠.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리면 벌겋게 피가 비칩니다. 얼마나 아픕니까. 회초리는 주로 싸리나무, 물푸레나무죠. 그래도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니 까, 때린 채찍을 팽개치지 않고 좋은 비단에 싸서 농 안에 잘 두고, 볼 때마다 운다는 말도 있습니다. 자식 의 피멍이 든 종아리를 쓰다듬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그 어머니, 진정한 어머니죠.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징계는 화풀이가 아닙니다. 골로새서 3:21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 심할까 함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공동번역은 “어버이들은 자녀들을 못살게 굴지 마십시오. 그들의 의 기를 꺾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6:4 공동번역은 “어버이들은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 지 말고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며 잘 기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잘 가르쳐야 됩니다. 오늘은 이만큼 합시다.
기도 올리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명하신 ‘의와 공도를 자녀들에게, 또 권속들에게 가르치라’는 말씀에 의지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선택 잘 해서 가르쳐야 했지만, 조상들과 선지자들, 하나님 의 사람들이 많았어도, 부모들이 정신 못 차리고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가운데 알지 못해서 자식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의와 공도를 가르치지 못한 죄 때문에 엄청난 홍수 심판과 불 심판을 받았습니 다. 부모 된 입장에서 우리 아들딸들을 진실로 뜨겁게 주 안에서 사랑하면서, 말씀으로 사랑하는 자식들을 제자 삼아 훈계하고 잘 가르치는 역사가 모두에게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주시는 말씀 정확하게 감사 하는 마음으로 받고 깨달아서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 한 자손을 얻을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빌고 원하올 때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감사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이렇게 읽었다
취재, 정리_권 에스더 기자
참평안 22년 11월호
"나에게 주시는 큰 울림"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의 네 번째 설교집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이 국내 최대서점인 교보문고에서 종교 분야 주간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 본 설교집은 박윤식 목사가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푸른동산교회에서 선포한 수많은 설교 가운데 20편을 모아 엮은 것으로, 2022년 11월 19일 기준 3,882부가 판매되어 발간된 지 약 5주 만에 초판(4,000부) 매진을 앞두고 있다.
본 설교집 내용은 종말, 환란을 이기는 믿음, 족장들의 연대기, 신앙 전수 등의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으며 1996년~2013년 미국 올랜도에서 선포된 말씀이었지만 2022년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국적, 연령, 지역을 초월해 큰 은혜를 주고 있다. 독자들은 하나같이 이 말씀이 ‘나’에게 적용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여 살아 있다. 그 위력을 휘선 박윤식 목사의 네 번째 설교집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 을 통해 다시금 느낄 수 있다. 이 설교집 안에서 시대를 초월하여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찾아보자.
김 다니엘 목사 올랜도 푸른동산교회
저는 이 설교집을 계속 읽으면서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 니다. 거의 모든 설교들이 10년이 넘었고 일부는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설교들은 오늘날 이 시대 를 살아가는 저의 신앙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이 설교들은 휘선 박윤식 목사님께서 이곳 에 계실 때, 올랜도 교회 성도들에게 주셨던 말씀일지 모르지만,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전 세계 모든 사 람에게 공유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저는 이 책을 읽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그러나 제가 이 책의 말씀을 천천히 읽고 소화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것이라 생각해서 그 또한 은혜라고 생각합 니다. 이 책의 발간을 허락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양도 집사 남선교회
휘선 설교집을 읽으면서 성도로서 좋은 목자를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귀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2007년에 주신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는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 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아브라함을 택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휘선 박윤식 목사님은 천국 입성하신 후 에도, 아니 우리가 변화되는 그날까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와 공도를 가르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 사님을 통해 주신 말씀으로 저를 비롯한 평강제일교회 성도가 열매를 맺어서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길 간절 히 소망합니다. 또한 열방이 달려오는 그날까지 저에게 맡기신 자리에서 더욱 청지기의 사명을 다하겠습니다.
박은혜 성도 청년 1부 헵시바 선교회
저는 휘선 설교집 4권에 있는 「어떠한 환난도 이기는 큰 믿음」(1999.2.21)이라는 제목의 설교 말씀을 읽으면 서 마음속에 울림을 받았고, 저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시험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항상 원망부 터 앞섰습니다. 조그마한 시험이 찾아오면 마음이 흔들리며, 감사는 도망가기 일쑤였습니다. 말씀을 읽고 나 니 언제나 우리에게 최고의 것을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께 받기만 했지, 그 사랑에 보답하지 못했던 것이 너 무나도 죄송스러웠습니다. 성경, 구속사 시리즈, 근현대사 시리즈, 휘선 설교집 등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말씀 이 이렇게도 많은데 단 하나도 제대로 읽지 않고 깨닫지 못한 저의 부족함을 다 회개하고 앞으로는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는 데 앞장서는 충성한 일꾼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시간이 때로는 지치고 힘들지라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시험이 와도 반드시 이겨 승리만이 가득한 아버지의 자녀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손예은 성도 목포 늘소망교회
저는 휘선 박윤식 목사님께서 쓰신 구속사 시리즈를 볼 때는 성경책과 노트를 같이 두고 봅니다. 말씀하신 성경 구절을 즉시 찾아보고, 노트에 정리하면서 기억하기 위함이지요. 그런데 휘선 설교집 4권은 그러지 않아 도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성경 구절들이 나와 있었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어투 그대로 적혀 있어서 음성 지원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설교집 말씀은 더욱 성도들이 잘 이해하고 기억하게 하시려고 더 쉬운 비 유로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올랜도 교회 식구들에게 주신 말씀이었지만 2022년, 갈수록 더 흉흉해지 고 힘들고 어려운 종말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 모두에게 어떠한 소망을 품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일러주 시는 듯한, 은혜와 사랑이 꿀처럼 뚝뚝 떨어지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동안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인 것만 알았지 ‘왜 아브라함을 택하셨을까?’라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책 제 목을 보고 생각하다가 ‘왜 나를 택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 지 않는 데도 성공한 사람들, 주일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이 직분만 아니었다면!’ 하는 원망 아닌 원망을 하는 나를 왜 택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 있는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을 보니 그것은 아브라함의 자식과 권속, 그 식구들, 그 가족들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 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저 역시 아브라함의 후손이니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여야 하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고 나아가야 하는 것을, ‘그래서 나를!’ 하고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이상원 성도 중등부
이 책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책”이다. 서울예고 입시를 앞두고 마음이 많이 힘들었을 때, 나는 올랜도 푸 른동산교회에서 새벽예배 때마다 틀어 주시는 휘선 박윤식 목사님의 말씀을 매 등굣길에 듣곤 했다. 그 말씀 들은 나의 신앙의 갈피를 잡아주었으며 입시로 인한 근심과 걱정을 모두 내려놓게 해주었다. 그러다가 올랜 도 푸른동산교회에서 휘선 박윤식 목사님의 설교 말씀들을 모아 책으로 발간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감사 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왠지 모를 반가움과 설렘을 느끼며 읽는데, 목사님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느 껴지는 듯했다. 한 장 한 장 읽을 때마다 주시는 주옥 같은 말씀들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또 때에 맞 는 해답을 주셨다. 사실 요즘 휘선 박윤식 목사님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휘 선 박윤식 목사님께서는 이런 분이시구나…’ 깨달을 수 있었다. 또 철두철미한 말씀 중심, 기도 중심의 신앙생 활의 표본을 보여 주신 목사님의 설교 말씀은 나로 하여금 있어야 할 위치로 갈 수 있는 원동력을 주셨다.
나는 아브라함이 만복의 근원이라는 사실도, 그러한 아브라함으로 만들어 가신 분이 하나님 아버지라는 사실 도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 설교집을 통해 깨닫게 해주셔서 매우 감사하고 감격스럽다. 이 책은 나에게 휘 선 박윤식 목사님같이 더욱 말씀 중심, 더욱 기도 중심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이 무언지 가르쳐 주었다.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을 온전히 받아 누릴 수 있는 열쇠 또한 건네주었다. 이렇게 큰 의미로 다가온 이 서책 을 잘 간직하며 이 서책의 말씀대로 살기로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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