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

유구한 역사속에 세계 최초로 밝히는
박윤식 의 구속사 시리즈

 1928년 5월 17일 황해도 사리원 출생

 충회 신학교(학부)졸업

 국민대학교 기업경영학과 졸업

 총회 신학교 신학원(목회학 석사)

 Faith Theological Seminary(명예신학박사)

 Lael College and Graduate School(명예목회학박사)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보수) 총회장 역임

 Knox Theological Seminary(명예신학박사)



저자 소개 목차




민족혼과 예수 그리스도 신앙의 정수가 담긴 구속사 시리즈



일제 36년간의 피눈물 나는 식민지 생활과 해방 이후의 극심한 좌우대립과 혼란, 그리고 6.25 동란으로 한반도 전체는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땅에 붙어사는 우리네 민초들의 삶은 초근목피(草根木皮)로 하루를 연명하며 소망 없는 나날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와 같은 한국현대사의 질곡을 저는 온 몸으로 느끼고 부딪치며 함께 울었습니다. 고향과 가족을 눈물로 등지고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의 품으로 왔습니다.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수호하고자 입대하여 총을 들었지만, 나라와 민족을 지키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앙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목회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성경을 펼치면 펼칠수록 캄캄해지는 저의 영적 무지에 절망하며 한 없이 울었습니다.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로 장안산과 지리산을 찾아 홀로 기도로 씨름하며 성경을 붙들고 3년여를 매달렸습니다.
오로지 기도와 성경. 해가 지면 기도 외에는 할 것이 없고, 해가 떠도 성경 읽기 말고는 더할 것이 없는 생활 속에 마침내 한줄기 빛이 임하였습니다.


“사람은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롬 3:4)


저의 거짓과 부패를 깨닫는 순간 오히려 주 안에서 새로워지는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 이후로 성경을 펼치면 당시 상황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듯 선명하게 깨달아졌습니다. 말씀을 깨달을 때마다 너무도 놀라운 세계에 그동안 나의 무지와 패역을 가슴을 치며 통회했습니다. 막혔던 영적 세계가 고속도로같이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미친 사람처럼 산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새로운 목회의 시작이자 2007년도부터 펴낸 구속사 시리즈의 출발점입니다. 성령의 강력한 조명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깨닫게 된 말씀을 커다란 칡 이파리에 적어나갔고, 긴 나무 꼬챙이에 끼워두었습니다. 몇 개월에 한차례 산 아래 마을(함양)에 내려갈 때면 종이를 사다 옮겨 적은 내용들이 구속사 시리즈의 초안이 되었습니다. 50여년 저의 목회를 통해 성도들과 나눈 은혜의 말씀, 틈틈이 설교 원고를 정리하고 연구한 내용들을 모아 드디어 세상에 졸작(拙作)이나마 선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간 한국 교회뿐 아니라 미주 지역과 동남아를 비롯, 수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에 구속사 홈페이지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저의 민족 혼과 신앙의 열정을 나누고자 합니다. 


나라 없는 신앙이 있을 수 없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는 평화 또한 불가능합니다. 저의 90평생의 삶을 통해 체험한 나라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망이 이곳에 오롯이 녹아 있습니다. 나이는 숫자일 뿐임을 제 삶을 통해 실감하며 마음은 독수리 청춘처럼 하루를 마지막처럼, 살아가며 남은 생애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를 구속사 시리즈를 통해 세계 교회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직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에 근거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부디 이곳 구속사 홈페이지를 많이 찾아주시어 격려해주시고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면 감사하겠습니다.

구속사 출간 17주년 시리즈 권별 소개 영상



휘선 박윤식 목사의 생애와 평강의 날


참평안(champyungan.com) 2016년 3월 27일

2016년 평강의 날 기사




평강제일교회 설립자이자 세계적 명저(名著) 구속사 시리즈의 저자인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는 1928년 음력 2월 11일 황해도 사리원에서 출생했다.(부친 박영춘, 모친 김보비) 그의 출생은 음력 2월 11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호적에는 후일 월남한 날짜인 5월 17일로 등재됐고, 그는 그의 생일을 월남한 날짜를 기념해 5월 17일로 말씀하셨다.


1946년 황해도의 최고 명문학교 해주동중(中)을 졸업했고(당시 해주동중은 지금의 중,고교 과정에 해당됨) 해방 후 북한 전역을 점령하고 있던 공산당으로부터 공산주의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출신 계급이 좋지 않으면당원이 될 수도, 김일성대나 모스크바대에 진학할 수도 없음을 알게 됐고 공산주의의 실상을 깨닫게 됐다. ‘당과 수령을 위해서라면 부모를 죽여도 죄가 안 된다’는 공산주의자들의 교육을 받았고, 실제 이런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목격한 뒤 1947년 5월 17일 새벽 2시 보안대 청사에 불을 지르고 월남해 전남 나주 영산포에 정착했다.


1958년 동마산감리교회 서리 전도사로 성역(聖役)을 시작했고, 장안산(47일)과 지리산(3년 6개월 7일간) 산상기도를 드리며 성령의 강력한 조명을 통해 성경의 말씀을 밝히 깨닫게 됐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롬 3:4)라는 음성이 들려왔고 “막혔던 영적 세계가 고속도로같이 뚫리는 기분에 너무 기뻐서 미친 사람처럼 산에서 춤을 추었다”며 휘선 박윤식 목사는 이 날이 10월 27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때부터 깨달은 말씀을 산상에서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 기록이 초고가 되어 2007년 10월 27일 구속사 시리즈 제 1권 「창세기의 족보」가 출간된 것을 시작으로 휘선 박윤식 목사의 천국 입성 전 제9권까지 출간됐으며 10-12권도 이미 원고가 완성된 상태로 이미 출간됐거나 출간 예정이다.


휘선 박윤식 목사는 하산 후 서울에서 목회를 다시 시작했다. 매일 2시간 이상 성경을 읽고, 3시간 이상 기도하는 철저한 말씀 중심의 목회를 통해 수만 명의 성도를 길러냈고 국내와 해외에 300개의 교회를 세웠다. 1990년대 중반에는 3년 6개월 동안 미국과 캐나다, 인도네시아에서 집중적으로 해외 선교에 매진해 각 교회들이 말세에도 흔들리지 않을 튼튼한 기초를 세웠다. 이후 박윤식 원로목사는 1997년 8월 6일 귀국했다.


2013년 12월 17일 한국 기독교의 최대 기구인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휘선 박윤식 목사와 평강제일교회의 신앙 노선에 대해 “박윤식 목사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였고, 그 신학은 철저하게 성경에 입각한 복음주의 개혁주의 신학임을 확인하였다.”고 공식 발표했다. 휘선 박윤식 목사는 2014년 12월 17일 천국 입성 직전까지 한 순간도 일선을 떠나지 않은 채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돌봤으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다.





구속사시리즈 저자 박윤식 목사의 집필 소회


2010년 8월 28일

참평안(champyungan.com) 2009년 11월 호




"오직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사 섭리가 전세계로 전파되는 것"
- 구속사시리즈 저자 휘선 박윤식 목사



구속사 시리즈 저자 박윤식 원로목사가 제4권 출판감사예배를 앞두고 열린 특별집회에서

자신의 50년 목회 역정과 구속사 시리즈 집필과정에서의 소회(所懷)를 담담하고 진솔하게 피력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구속사 시리즈 4권이 출간됐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대로 저는 목회 초창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깊이가 너무도 일천해서 지리산 굴 속에 들어가 약 3년 6개월 동안 기도와 성경 읽기에 전무(專務)한 적이 있었습니다. 쌀을 컵 속에 넣고 물에 불린 뒤 솔잎과 함께 생식(生食)을 했습니다. 쌀 소두(小斗) 한 말이면 두 달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성경만 읽으면서 성령의 강한 조명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고, 깨달아지는 것이 있을 때마다 원고에 적어 놓곤 했습니다. 원고지가 없으니 커다란 칡넝쿨 잎에 적어서 싸리나무에 꿰어 두었다가 원고지를 구해서 다시 정리했습니다. 산속에 오래 있으니 간첩으로 오인 받아서 함양경찰서에 끌려간 적도 있었습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뒤 다시 목회를 하면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은 기간이 120년이 아니라는것, 마태복음 족보에는 애굽 시대 430년과 사사 시대 340년의 기간 중에 많은 대수(代數)가 누락돼 있다는 것, 노아의 아버지인 라멕이 인류의 조상 아담과 56년간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사실, 노아와 아브라함이 58년간 동시대를 살았다는 사실 등을 가르쳤습니다. 그러자 성경을 자세히 연구해 보지도 않은 채 저를 무조건 비난하고 시비를 거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 저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대체 무슨 괴로운 일이 있으시길래 이렇게 되셨습니까"


새문안 교회 집회에 갔다가 강신명 목사님이 종교문제 연구가라는 모씨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이단 문제를 연구한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의 요청에 따라 저희 교회에서 물질적 지원을 해줬습니다. 당시로서는 상당한 액수였습니다. 그런데 1978년에 그가 전국 4대 일간지에 “통일교는 이단이 아니다”라는 광고를 내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이 그것을 보고 “그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니 지원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신관(神觀), 기독론이 틀리고 교주를 하나님이라고 하는 통일교가 이단이 아니라고 하니 더 이상 그를 지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뒤 그가 앞에서는 저를 찾아와 계속 도와달라고 하면서 뒤에서는 저를 비난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당시 미국 선교집회에 어머니 성가대 60여 명이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집회를 마친 뒤 네댓 명씩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사진을 입수해서 저와 제 바로 옆에 있던 여자 성도 두 사람의 사진만 오려내 자신이 출판하는 이단 문제 잡지에 ‘여인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며 게재했습니다. 그때부터 긴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참으려고 애썼습니다. 하도 참으니 치아가 다 떠서 밥을 못 먹고 물만 먹어도 아플 지경이 됐습니다. 결국 치아를 다 빼내야 했습니다. 의사가 “대체 무슨 괴로운 일이 있으시길래 이렇게 되셨습니까”고 할 정도였습니다.


지리산에서 기도를 드릴 때 욥의 친구들이 찾아와 7일 주야를 함께 하는 장면을 보며 욥의 고난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긴 적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에 그의 고난이 무려 30년 동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는 감히 ‘욥과 같은 인내의 신앙을 달라’고 기도를드리지 못했습니다. 욥은 인내를 통해서 끝을 보았습니다. 저도 욥의 고난을 깨닫고 나니 그들이 저를 근거없이 모함해도‘나는 방언을 하거나, 안수를 하거나, 기사,이적을 행하는 사람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해서 말씀으로 끝맺는 사람인데 그런 말에 흔들릴 것 없다. 내가 잘못이 없으면 그만 아닌가’하고 마음먹고 20년 동안 참고 인내했습니다. 피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앞에 가면 백보좌 심판이 있다고 요한계시록 20장에 기록돼 있습니다. 그 앞에 가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다 드러날 텐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저는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인생의 낙오자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오늘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고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는데 왜 천국에 못 가겠습니까? 저는 곧 85세가 됩니다. 지난 40년 동안 저는 하루 3시간 반 씩만 잠자면서 성경 읽고 기도하는 생활을 계속해 왔습니다. 지금도 매일 교회 뒷산에서 기도하고 새벽 1시반, 2시에 내려옵니다. 누가 제 사무실로 찾아오면 늘 성경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셨을 겁니다. 지금까지 1800번 성경을 읽었습니다. 몇 쪽 하단에 무슨 구절이 있다는 것을 알 정도가 되었습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성경으로 시작해 성경으로 끝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꿈을 꿔서 알았다, 계시를 받고 깨달았다’하는 허망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 선교 여행을 갈 때면 기장과 승무원과 승객들이 예수 믿지 않을래야 믿지 않을 수 없는 축복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차를 타고 갈 때도 운전사와 밖으로 보이는 행인들과 들판에서 농사짓는 분들이 우상을 버리고 예수 이름으로 복 받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말씀처럼 기도 쉬는 죄를 범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평생 극장에 가 본 적이 없고 화투를 치거나 바둑, 장기를 둬 본 적이 없습니다. 춤추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하고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나이가 많아지니 가끔은 동창들이 “네가 목사면 목사지, 동창들끼리 다 모이는데 한 번도 안 나오면 되느냐. 얼굴 한번 비춰라. 예배는 다른 목사들한테 한번 맡기면 되지 않냐”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성경에 예배에 빠지지 말라고 돼 있다.”고 대답합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저는 인생의 낙오자인지도 모릅니다. 인생의 즐거움을 아는 것이 없습니다. 제 이름으로 건물 하나 등기된 것이 없습니다. 교회 집무실에서 숙식을 합니다. ‘내가 떠나면 그대로 교회 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 가운데 저에게 최고급 승용차를 선물해 주고 싶다며 큰 돈을 주신분이 있었습니다. 제 양심에 ‘예수님은 맹물 한 그릇도 대접받지 못하셨는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최고급 차를타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달에 10만 원도 못 버는 분들도 있는데…’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집이 없는 교회 직원들에게 드려서 집을 사시도록 했습니다.



예수님은 맹물 한 그릇 대접받지 못하셨는데


저는 교회 손님이 오시거나 교역자와 직원들과 함께라면 몰라도 저 자신을 위해서는 교회 돈을 쓰는 법이 없습니다. 배가 고프면 전도사님들에게 얼큰한 라면 한 그릇 끓여 달라고 합니다. 이북 출신인 제가 좋아하는 것은 오직 냉면입니다. 냉면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도 먹을 수 있습니다. 구두는 꿰매고 뒷축을 갈아서 15년을 신었습니다. 언제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그 나라로 간다는 생각으로 삽니다. 그래서 언제나 ‘오늘’의 믿음으로 삽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된 것


구속사 시리즈가 출간된 뒤 많은 분들이 찬사와 격려를 해주고 있습니다. 한 미국 학자는 저에게 “구속사 시리즈의 많은 부분이 유구한 역사 속에 세계 최초로 당신이 밝힌 내용들이다.”라고 했습니다. 국내 어느 학자는 “목사님이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라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모든 것이 제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한 것입니다. ‘내가 했다’는 마음을 먹는다면 저는 하나님께 벼락을 맞을 것입니다. 오직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사 섭리가 전세계로 전파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고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이 있다는 것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내 속에 모시고 기도하면 응답을 받습니다. 응답 받는 삶을 살면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절대 불안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시기, 질투, 싸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번 집회에 어렵게 참석하셨으니 단 30분, 단 1시간이라도 부부, 자식, 사업, 모든 문제를 걸머지고 간절하게 기도해서 해결 받으시기 바랍니다. 흉년에도 100배의 수확을 이삭에게 주셨던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복음을 전할 지혜와 지식과 명철과 총명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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