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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판 싱가포르 시온교회(www.zionchurchsg.com)에서 대한민국 근현대사시리즈 영문판을 출판하였다. | ![]() ![]() |
근현대사시리즈 소개 목차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실제로 있었던 그대로 정확히 기록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는 실제 증언과 폭넓은 사료를 바탕으로 한 사실성이 탁월한 기록으로,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의 장래를 걸머지고 나갈 사랑하는 후손들과 국민들이 읽고, 오직 나라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쓰여진 것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있었던 혼란상을 쉽고도 명쾌하게 정리하여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데, 박윤식 목사의 사재를 털어 2012년도부터, 공공기관, 학교, 군부대, 교도소에 이르 기까지 8만 세트, 30만여 권이 기증되었고, 전국에 약 70만권이 배포되었다.
▲ 도서 소개 목차
제1권 : 구한말-일제 강점기
![]() | 숭문천무(崇文賤武)조선 말기(구한말) 나라는 극도로 부패하였다. 조정은 뿌리 깊은 당파 싸움과 세도정치 속에서 나라의 부국강병에는 전혀 힘을 쏟지 않았고,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족보를 위조해서라도 양반이 되려는 자들이 늘어갔다. 일제는 그 틈새를 휘젓고 들어와 국론을 분열시켰고, 1895년 10월 8일 새벽 2시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 1905년 11월 19일 을사늑약, 마침내 1910년 8월 29일 강제합병(경술국치)으로 우리나라의 주권을 송두리째빼앗았다.3.1독립운동부모 잃은 고아처럼 가련한 신세가 된 우리 민족은 한일강제합병으로 한반도의 식민화가 시작된 암흑의 세월9년, 1919년 3월 1일에 이르러 늦게나마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울분으로 온 국민이 하나 되어 3.1독립 운동을일으켰다. 전국 방방곡곡의 200만 이상 국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애국 애족의 민족혼이 전국적으로 불길처럼타올랐다. 일제의 만행과 8.15해방일제는 독립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을 내란죄의 명목으로 검거하였고, 검거된 자들은 하나같이 뼈를 깎는 고문을 겪어야 했고, 기독교인들에 대한 많은 학살을 자행,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강요, 조선의 젊은이들을 총알받이로 또는 성 노예로 팔아넘기는 등 일제의 잔인무도한 만행이 계속되었다. 우리나라는 3.1 독립운동이 있은 지 26년 만인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고 연합군이 승리하면서 감격적인 해방을 맞게 되었다. |
제2권 : 1948년 제주 4.3사건
![]() |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은 중앙당의 지령에 따라 남한의 단독선거(1048. 5. 10)를 방해하며 제주도의 공산화는 물론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무장폭동계획을 수립,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를 기해 제주도 내 12개 지서를 습격, 불을 지르고 행정관서를 장악함으로써 경찰에 큰 타격을 주었다.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령을 해제하고 백록담에 평화기념비를 세우기까지 6년 6개월 동안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길고 비극적인 반란이었다. |
제3권 :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사건
![]() | 여수 순천 사건은 제주도의 폭동 진압을 위해 출동 준비 중이던 여수 14연대에서,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을 받은 인사계 지창수 상사와 김지회 중위, 홍순석 중위의 주도로, 좌익 남로당원 50여 명이 일으킨 반란이다. 반란군들은 여수 시내에 있던 6백여 명의 좌익 세력과 합류하여 여수 시내의 양민들을 학살하고,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였다. 이에 군 좌익 세력 뿐 아니라 지방 좌익 세력과 동조자들이 가담함으로써 그 세력은 여수에서 순천까지 확대되었다. 사건 발생 8일 만에 국군에 의해 진압되었으나 일부 반란군은 백운산을 경유, 지리산 일대로 도주하여 게릴라(일명 빨치산) 부대를 형성하게 된다. |
제4권 : 잊을 수 없는 6.25 전쟁
![]() |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공산당은 선전포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기습 남침을 감행하였다. 북한 공산군은 작전 명령 ‘폭풍’이라는 이름으로 256대(T-34)의 전차와 자주포(SU-76) 176문 등의 막강한 화력을 갖추고 38선 240㎞ 전역에서 일제히 몰아쳐 넘어왔다. 불과 3일 만에 북한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점령하였다. 국군은 반격도 못해 보고 문산의 5사단과 1사단, 동두천 7사단, 포천 2사단, 수도 사단, 대구 3사단, 도합 6개 사단 4만 4천 명이 전멸되었다. 6.25전쟁은 1953년 7월 27일 밤 10시 휴전협정이조인되기까지 만 3년 1개월 2일 동안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냈고, 그것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뼈아픈 냉전 시대의 비극이 되었다. |
▲ 도서 소개 목차
「대한민국 근현대사시리즈」 이렇게 쓰여졌다.

휘선 박윤식 목사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현장을 본격적으로 찾은 것은 1997년부터였다. 3년 6개월 간 계속된 해외 선교를 마치고 귀국한 뒤였다. 시작은 박 목사가 6·25 전쟁 전후로 거듭된 격전을 벌일 때 도움의 손길을 줬던 분들을 찾아가 만나는 것부터였다. 그에게는 전투 현장이 기도의 현장이었고, 평생 잊지 않은 역사의 현장이었다. 박 목사와 동행했던 교직원, 성도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 사람을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박성현 장로, 김원순 권사, 백연숙 권사, 백희숙 권사, 황정희 박사 등이 박 목사와 동행하며 사람 찾는 것을 도왔다. 박 목사는 목숨을 건 전투가 이어졌던 현장들의 산세(山勢) 하나까지 또렷이 기억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옛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현대화돼 있었다. 행정 관청에 찾아가 개발 전의 지적도(地籍圖)까지 뒤졌지만, 6·25 전쟁 이전의 행정자료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박 목사는 주일마다 예배가 끝나면 바로 차를 타고 지리산 일대로 내려갔다. 다음 날에는 종일 산길 곳곳을 헤매며 도움 받았던 집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마침내 당시의 은인을 만나면 어떤 집은 밭을 사드리고, 어떤 집은 금 열 돈 씩을 안겨드리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곤 했다. 박 목사는 현지로 내려갈 때면 언제나 밭을 살 돈이나 금 열 돈씩을 싸서 다녔다. 어떤 집은 몇 년을 찾아다녔는데도 도저히 찾지 못해 너무나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박 목사는 가는 곳마다 당시의 치열한 전투 모습을 회고하며 전우들을 추억했다. 수풀만 무성한 산 속에서 직접 몸을 움직이면서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바로 그 게릴라 전투할 때 소수의 전우들과 싸우던 자리야”라고 설명하면서 지도에 위치를 표시하고 메모를 남겼다. 한 차례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방문할 때마다 연거푸 확인하고 다시 거리를 측정했다. 이런 철저한 현장 답사가 그가 2012년 발간한 ‘대한민국 근현대사시리즈’의 기초가 됐다. 동행한 교직원, 성도들은 수풀 우거진 곳의 풍경은 다 비슷하니 처음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 있었던 치열한 전투의 모습을 생생하게 설명해주시는 거예요. 여기선 이렇게 몸을 구겨서 숨기고 있었다고 하시면서 직접 몸을 웅크려 보이기도 하시면서. 또 어느 지점에선 여기서 쓰러져 간 전우들이 생각난다면서 한참을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어요.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차라리 잊혀졌으면 좋겠는데 점점 더 또렷해진다고 하셨습니다.”
박윤식 목사의 근현대사 현장 방문은 지리산에서 시작해, 여수, 포항, 영해, 영덕, 포항, 안덕, 태백산,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장안산 등으로 이어졌다. 모두 6·25 전쟁 전 남로당 빨치산 토벌전이 벌어졌거나, 6·25 전쟁 때 인민군과의 격전이 벌어졌던 현장이었다. “어느 곳에 가시면 그 전에 갔던 장소에서 그곳까지 군사적으로 이동할 때 쓰던 지름길이 있다면서 알려주시곤 하셨어요. 지도나 내비게이션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박윤식 목사가 근현대사 현장을 답사하고 ‘대한민국 근현대사시리즈’를 집필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여러 사람이 당시 현장을 기록한 역사책들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박윤식 목사는 그 역사 기록들을 보고는 “이건 다 거짓말이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역사 현장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심지
어는 정부의 공식 기록물에도 많은 오류가 있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역사 기록이 달라지고 왜곡되곤 했기 때문이다. 박 목사는 이런 오류들을 하나하나 날카롭게 찾아냈다. 누렇게 변색될 정도로 오래된 군사 문서들이 하나둘 씩 발굴되면서, 박윤식 목사의 증언이 옳다는 것이 계속 드러났다.
휘선 박윤식 목사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구속사(救贖史) 시리즈’ 집필을 중단하면서까지 ‘대한민국 근현대사시리즈’를 썼던 2011년은 그가 대장암 진단을 받고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던 시기였다. 몇 해 동안 계속돼온 대상포진이 머리까지 뻗어가 극심한 고통을 겪던 때이기도 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책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주위에 “내가 근현대사시리즈를 쓰는 것은 내 목숨을 걸고 쓰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바른 역사를 전해야 한다.” 고 말했다.
마침내 2011년 11월 ‘대한민국 근현대사시리즈’가 출간됐다. 책이 나오자 굵직한 역사의 증인들이 속속 증언을 자청해 왔다. 6·25 전쟁 당시 전설적 종군기자로 활약하며 국군의 평양 탈환 기사를 전세계에 처음 송고했던 이혜복 기자(이혜복 기자는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당시 33차에 걸친 공판에 전부 참석하여 보도하기도 했다), 1948년 여수 14연대 반란 당시 14연대 인사장교로 현장을 직접 목격한 김형운 예비역 대령, 당시 반란군에 의해 대퇴부 관통상을 입었던 박윤민 예비역 대령, 여수 14연대 반란의 주동자인 홍순석, 김지회와 육사 3기 동기였던 조혁환 예비역 장군, 6·25 전쟁 당시 보병 중대장으로 전선에서 활약했던 마지막 주월(駐越) 공사 이대용 장군 등이 그들이었다. 이들은 “왜곡된 역사에 대해서 옳은 소리를 책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은 많이 했지만, 그 작업의 방대함을 알기에 몸소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다. 이제라도 근현대사의 참상을 올바로 알릴 수 있음에 감사한다.”라고 인사를 전했다. 여수 순천 사건 당시 순천경찰서장으로 남로당원들에 의해 가장 참혹한 죽음을 당한 양계원 총경의 후손들은 “정확하고 자세하게 당시의 참상을 기록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박 목사는 사재를 털어 ‘대한민국 근현대사시리즈’ 30만 세트를 군 부대, 학교, 공공기관, 교도소등에 보급했다. 대형서점에서도 많은 부수가 팔려나갔다. 지금까지 판매, 기증된 권수가 70만 권이 넘으니 국민 700명당 1권 꼴로 보급된 셈이다. 국군의 정신교육을 총괄하는 국방정신전력원과 합동군사대학교는 이 책을 교재로 채택했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에서도 부교재로 채택했다. 책을 읽고 감동한 많은 독자들이 편지를 보내왔고, 독후감을 통해 느낀 바를 나눴다. 박윤식 목사를 비롯한 목격자들의 증언은 이제 과거를 정확히 알고 현재를 직시하는 다음 세대에게 넘겨졌다. 이제는 이들이 역사의 새로운 증인이 된 것이다.
“과거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현재를 정확히 보게 하고 동시에 발전된 미래의 건설을 가능케 합니다. 세계를 선도해 나갈 대한민국의 찬란한 미래를 건설하고자 할 때,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과거의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공정을 기하는 것입니다.”(대한민국 근현대사시리즈 저자
서문 중)
휘선 박윤식 목사는 교회가 나라의 병거와 마병(왕하 13:14)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 초기부터 평강제일교회는 목요 구국(救國)예배를 드리며 애국가와 통일의 노래를 제창해 왔다. 박 목사는 목숨을 내걸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을 깊이 사랑하고 존중했다. 평강제일교회는 1970년대부터 많은 부대를 찾아가 장병들을 위로했다. 1997년 이후의 부대 위문행사에는 평강제일교회 성도인 금방울 자매가 동행했다. “박 목사님은 직접 근현대사의 시기에 맞는 곡들을 골라주시고, 그 시대의 역사 상황들을 알려주셨어요. 가령 “우리 국민들이 일제 강점기에 나라와 고향을 잃은 슬픔을 달랬던 노래, ‘황성 옛터’와 ‘타향살이’를 불러 보겠습니다.”라고 소개하고 노래를 부르고 나면, 박 목사님이 직접 단상에 나와 마이크를 들고 그 시대를 생생히 설명해주셨죠. 그 내용이 근현대사시리즈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금방울 자매)
나라와 민족이 고통 받던 시절의 노래와, 박 목사의 생생한 증언에 애국심으로 무장된 군인들의 마음이 열리곤 했다. 마냥 강해 보이는 군인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같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고 동행했던 성도들은 증언한다. 평강제일교회에는 지금도 박 목사의 올곧은 국가관과 감동적인 설교, 그리고 군인들의 헌신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존중하는 모습에 감동 받은 많은 군인들이 출석하고 있다. 평강제일교회에서 성장한 많은 청년들은 장교로 입대해 국방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박 목사는 육군 부사관학교에 장병들의 체력 증진을 위한 피트니스센터를 설립했고, 부사관학교는 이를 ‘휘선 피트니스센터’로 명명하고 박 목사의 애국, 애족 정신을 장병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박윤식 목사는 군 부대 위문 때만이 아니라, 애국, 애족과 관련한 교회 행사와 중요한 절기 기념예배 때도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가요들을 성도들에게 알려주고 함께 불렀다. 그는 “그 시대의 가요야 말로 당시 서민들의 삶과 감정을 거짓 없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안 울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기록이나 문서는 사람에 따라 왜곡될 수도 있고, 시대에 따라 변색될 수도 있지만, 그 당시 국민들이 즐겨 부른 ‘가요’는 국민들의 정서와 시대상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가장 정직하고 살아있는 역사’라는 것이다. 예컨대 ‘굳세어라 금순아’(현인 노래)는 젓가락 두드리며 부르기 좋은 가락 같지만, 실상 6·25 전쟁 때 압록강까지 북진했던 국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후퇴하면서 벌어진 흥남철수작전 때의 비극을 그린 노래다. 남으로 내려가려는 피난민들이 미군 군함인 빅토리아호에 타려고 인산인해를 이뤘는데, 그때 동생을 잃어버린 언니의 애타는 심정을 그린 노래인 것이다. 박 목사는 말했다.
“그 때(흥남철수 당시) 기온이 영하 30도여서 미군들도 많이 죽었습니다. 그때 금순이가 7살이고 화순이가 15살인가? 언니 화순이가 동생 금순이를 잃어버려서 찾아다니는 걸 동아일보 기자가 알게 된 이후 ‘굳세어라 금순아’ 라는 노래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역사의 기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가(史家)의 역사관이다. 박윤식 목사는 “국가의 역사 위에 성경이 기록되었다”(1998년 9월 4일 새벽예배)라는 설교를 통해 “예언(계시)에는 역사가 있어야 하며, 역사는 국가가 있어야 하고, 국가는 국토와 백성, 주권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진실한 예언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진실한 역사와 참된 국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가들이 연구실에서 다른 사료(史料)들을 연구하고 비교해 역사서를 쓰지만, 휘선 박윤식 목사는 자신이 역사의 목격자 임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많은 역사 현장을 답사하고 생존자들의 증언을 수집한 끝에 자신의 진액과도 같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시리즈’를 발표했다.
기독교사의 3대 명저인 어거스틴의 ‘신국론(神國論)’은 교회의 수호자인 로마 제국이 왜 이교도인 이방인들에게 처참하게 유린되고 있는지에 대한 답으로, 저자가 생을 마감하기 4년 전 완성됐다. 이 책은 신학적인 명작일 뿐 아니라, 역사학자들에게는 향후 서양 역사철학 1,000년을 결정지은 찬란한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박윤식 목사의 ‘대한민국 근현대사시리즈’는 그의 목회 사역 마지막 시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심각한 이념 대립과 정치적 혼란에 대한 올바른 역사의 대답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의 독자들에게 이념의 대립을 종결하고, 오직 사실에 근거한 바른 역사관의토대에 서서 찬란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

참평안 휘선특별호 제3권 _ 제3부 | 구속사(救贖史)와 세속사(世俗史)가 하나로 만나 p.78에 수록된 글입니다.
▲ 도서 소개 목차
구한말 이후 오늘날까지 고요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 가운데 최대의 격동기를 뚫고 전진해 왔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그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역사는, 감히 필설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난의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세계열강의 각축과 일제의 수탈과 압제, 해방 이후 좌·우익 대결의 혼란, 6·25전쟁의 참화, 반복되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칠흑 같은 흑암과 혼돈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불우했던 약소 민족 대한민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평화를 사랑하며 본심이 선하고 착한 백의민족 (白衣民族) 이었습니다. 순박하고 순진하기 그지없는 우리 민족은, 오직 나라가 잘되어야 백성이 잘
된다는 일념(一念)과 허리를 졸라매는 근검절약으로 마침내 부강한 나라를 이룩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은 하늘에서 비춰 주신 한 줄기 소망의 빛을 붙잡고 신통하게도 그 거친 역사의 격랑을 헤치고, 마침내 민족 본연의 기개를 드높여 전 세계 선망의 대상으로 우뚝 솟아올랐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위대한 민족사적 대업을 완수하고, 세계를 선도하는 일류국가가 되어 새로운 시대적 정진을 이루어야 할 중차대한 역사적 분기점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장 시급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확한 역사의 인식과 전수입니다.
역사란, 지난날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세계나 국가 민족 등이 겪어 온 정치적·사회적·문화적 변천의 과정이나 중요한 사실과 사건의 자취를 말합니다. 분명 역사는 과거를 토대로 현재를 거쳐 미래로 부단히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흘러 나아갑니다. 현재의 역사는 과거 모든 역사의 결과물이므로, 과거의 역사 없이는 현재의 모습이 구현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현재를 정확히 보게 하고 동시에 정확한 미래의 건설을 갈 대한민국의 찬란한 미래를 건설하고자 할 때,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과거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공정(公正:공평하고 올바름)을 기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가능케 합니다. 세계를 선도해 역사 기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실제 있었던 그대로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날조하여 기록하는 것은바른 역사관(歷史觀)이 아닙니다. 자기 견해와 입장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역사적 상황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치우쳐서 어느 한 부분을 과장하거나 부풀려 기록하고 의도적으로 빼 버리는 것 또한 바른 역사관이 아닙니다. 우리는 역사를 기록할 때 양심을 속여서는 안 되며, 양심에 화인(火印) 맞아서 거짓말하는 자가 되어서 도 안 됩니다. 옛 성인들의 말처럼 양심의 악을 깨닫지 못하거나 아예 양심이 없는 사람은 참된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살아 있는 양심을 가지고 사실 그대로 기록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후손들이 그 역사를 좌나 우로 치우침이 없이 객관적으로 읽고 또 기록해 나가도록 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는 민족은, 결단코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며 새로운 역사의 창조적인 주역이 되어 전 세계를 밝혀 나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민족이 바로 유대 민족입니다. 이스라엘 ‘야드 바쉠 홀로코스트 박물관’ 전시실 2층 동판에는 “Forgetfulness leads to exile, while remembrance is the secret of 태로 이어지나 기억은 구원의 비밀이다.)라는 문구가, 그리고 기념관 출입구에는 “Forgive, but remember.”(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다시 비참한 멸망의 상황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유대인의 깊은 민족적 참회와 깨달음, 그리고 미래에 대한 각오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120세로 운명하기 직전에 가나안 입성을 앞둔 제 2세대들에게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라고 준엄하게 명령하였습니다. 이는 과거 역사를 회고함으로써 미래 역사를 전망하라는, 유언과도 같은 메시지입니다. 기억해야 할 ‘옛날(the days of old)’과 생각해야 하는 ‘역대의 연대(the years of all generations)’에 대한 언급은, 현존하는 역사에는 분명한 시작과 뿌리가 있음을 알려 줍니다. 기억하라(remember), 생각하라(consider), 물으라(ask)’라는 이 세 가 지 명령은, 우리 후손들에게 역사에 대한 교육이 반드시 그리고 중단 없이 계승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일깨우고 있습니다. 역사 교육을 통해 우리 후손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찾고, 아비가 설명해 주고 어른들이 일러 주는 역사적 진실과 심원한 경륜을 배움으로써, 우리 민족은 비로소 나라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찾게 될 것입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역사 교육이야말로, 만세에 빛나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참된 원동력과 생명줄이며, 향후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과제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은, 대한민국 백성이라면 반드시 그 실상을 바로 알아야 하고 영원히 기억해야 할 역사적 이정표입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의 암울하고 처량했던 식민 통치와 수백만의 목숨이 희생된 6·25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이미 80세가 넘었고, 그 이후 세대는 대부분 그때의 비극을 알지 못하거나 옛날이야기 정도로 가볍게 여기고 무관심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지나치게 왜곡되어 차마 눈을 뜨고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편향되고 좌경화되어 버렸습니다. 심하게 편향되고 좌경화된 물결이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는데, 이것은 대한민국을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무서운 것임을 온 국민이 깨어 직시해야 합니다. 역사를 왜곡시켜 놓은채 이기적이고 단편적인 주장들로 국론이 분열된다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이 풍랑에 쉽게 무너지듯이, 아무리 최고로 발전한 물질문명을 가진 나라라도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격동기의 현장을 직접 체험한 산 증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해방 이후 고향 이북에서 공산당에게 공산주의 교육을 받았고, 그 실상 또한 낱낱이 목격했고 실제로 경험했습니다. 월남(越南) 전에 이미 레닌(Vladimir Lenin)의「국가와 혁명」,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마르크스(KarlHeinrich Marx)의「자본론」, 「공산당 선언」등을 교재로 공산주의 사상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었고, 이러한 교육과 체험을 통해 공산주의의 허구성과 치명적인 한계를 누구보다도 정확히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1917년 11월 7일, 레닌의 주도로 볼셰비키 러시아 혁명을 승리로 이끈 공산주의는 1991년12월 31일 완전 붕괴되어, 약 75년 만에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것은 공산주의가 이론은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론대로 실현되지 않는 허구임을 보여 준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자유와 번영,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이렇게 허무하게 붕괴될 수 있단 말입니까? 공산주의는 당 간부를 비롯한 특권층만 잘살고 교육적 혜택을 누리는 독재 체제요, 공산주의가 들어간 나라마다 무자비한 살상으로 피바다를 이룬 참혹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이미 역사의 심판을 받았고 온 세계가 내다버린 쓰레기같이 된 이론을 아직도 붙잡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 참으로 통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책자를 통해 현세대가 전혀 체험하지 못한 을미사변, 을사늑약, 한일합병, 대구 10월사건, 제주 4·3사건, 여수 순천 사건 등을 상세하게 밝히고, 무엇보다 공산주의가 개인과 민족에게 미치는 심각한 파괴력과 그에 따른 폐해를 분명하게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가장 암울했던 현대사를 통해, 나라 없는 설움이 어떤 것인지, 또 나라를 빼앗긴 비참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두에게 일깨워 주고 싶습니다. 저로서는 최선을 다해 현장을 방문하여 눈으로 확인하면서 마지막까지 증언자들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고, 그들의 증언을 정성껏 녹취하고 재차 확인하였습니다. 나름대로 공을 들였으나 아직 미흡하고 불완전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더 늦기전에 역사적 진실을 후대에 왜곡 없이 전달해야 한다는 소박한 뜻으로 책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섬기는 교회에서 국가의 국경일이나 절기, 목요일마다 꾸준히 해 온 구국(救國) 강연 원고들 과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대하여 45년간 꾸준히 연구하며 정리해왔던 조각들을 한곳에 모아 조그만 결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북에서 공산주의의 허구성을 깨닫고 1948년 월남하여 춥고 배고프던 차에 통위부 후방사령부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여, 당시 군대의 상황을 누구보다 피부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국방 경비대에서 먼저 입대한 군인들이나 하사관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의 실상과 공산주의의 허구성을 설명하곤 하였습니다. 그때의 국방경비대 사령관은 송호성 준장이었는데, 그는 여수 순천사건 20여 일 전인 1948년 9월 말에 저를 선도하겠다고 불렀습니다. 그는 두 시간 가까이 북한 공산주의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고 대화하는 가운데 저를 위하는 척하면서 “지금은 공기가 좋지 못하니 당분간 말조심하라”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송호성 사령관의 태도를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6·25때 인민군에 의해 서울이 점령당하자, 남하하지 않고 인민군 여단장이 되어 국군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1950년 7월 4일 대남방송을 통하여, 국군병사들과 장교와 삼천만 동포들에게 자기를 본받아 인민군과 빨치산이 되어 “총부리를 돌려 인민의 원수 미제와 매국노 이승만 괴뢰도당을 타도하라”라고 부르짖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1948년 12월 보안법이 발표된 후 갑자기 부대의 많은 군인들이 탈영하였으며 그 대다수가 지휘관들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남로당에 가입하였던 빨갱이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6·25가 발발했고, 저는 인민군과의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면서 밀리고 밀려 남하하게 되었습니다. 곳곳마다 공산당의 만행으로 처참하게 학살 당해 나뒹구는 시체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였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무서우며 공산당이 얼마나 잔악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으며,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고 이 지구상에서 공산주의는 없어져야만한다는 것을 온 몸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남하하던 중 지리산 전투에서 인민군의 총격으로 다리에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계속되는 저리고 아픈 총상의 통증은, 일평생 저에게 나라가 얼마나 귀중한지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오래 전에 목회 일선(一線)에서 은퇴하고 어느덧 85세가 다 되어 인생의 황혼기를 살고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나라가 또 부른다면 다시 전장에 나가리라 하는 마음의 충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고 참된 구국(救國)입니다. 조국을 위해 목숨 바쳐 일 하는 군인, 경찰, 공무원들, 노동자들, 남이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안위를 노심초사하는 이름 없는 진실한 애국자들이 많이 있기에,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든든하고 후손들의 미래는 희망찹니다.
나라 없는 개인은 존재하지 않으며, 역사 없는 나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곧 우리 각 사람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제 나라의 역사를 모른다면 누구도 자기 정체성을 올바로 세울수 없고, 그 개인의 앞날은 물론 나라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역사에 대한 정확하고 올바른 인식이 곧 애국심의 참된 발현이며, 앞으로도 대한민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는 첩경(捷徑)입니다. 저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마 땅히 알아야 할 역사를 사실대로 전해 주어야만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책을 집필하였습니다. 부디 온 국민이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나라 사랑의 뜨거운 애국심으로 불타올라,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대한 나라로 만들어 가는 찬란한 횃불들로 쓰임 받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1년 11월 5일
박 윤 식
▲ 도서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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