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릿마(가데스 바네아)에서 발행하여 다시 가데스 바네아로 돌아오기까지 여정
3. 마흔두 번 진을 친 장소
23) 데라 Terah(민33:27)
데라는 제 23차로 진을 친 장소입니다.
뜻] 데라는 '체류하다, 제체하다'라는 뜻입니다.
위치] 릿마(가데스)에서 광야 40년이라는 징벌을 받고, 아홉 번째 진친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이 후의 여정이 호르산 쪽으로 간 것을 볼 때, 다핫의 위치(북쪽)에 위치하였을 것입니다.
내용] '데라'는 구약성경에서 열세 번 나오는데, 두 번은 지명으로 사용되었고(민33:27-28), 나머지는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를 가리키는 인명으로 사용되었습니다(창11:24-26).
교훈] 데라에서의 사적은 성경에서 달리 기록된 곳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데라에 도착하기 직전에 진을 친 장소는 다핫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경로를 호르산이 있는 모세롯 근처로 이동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다핫으로부터 데라로 북상시키셨습니다.
샘이 많았던 릿마와, 와디(wadi) 가까운 곳에 있었던 데라는 지리적으로 물이 풍부한 환경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데라의 뜻처럼 이곳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광야 행군을 지연시키며 머물러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데스(릿마)에서의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40일이 40년으로 지연되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민13:25-14:35). 순종은 영생으로 가는 형통한 자름길이나, 뜻을 지연시키는 불순종은 영원한 사망입니다.
한편, '데라'는 아브라함의 아비의 이름이기도 한데, 그는 이름의 뜻처럼 지체하고 머뭇거리는 삶을 살았던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라'라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좋은 환경의 하란에 머물러 비체하다가 끝내 하나님의 뜻이 머물러 있는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고 말았습니다(창11:31-32, 행7:1-4). 지금 우리가 세상의 풍요로움에 마음이 기울어진 상태라면 그것은 바로 불순종의 시작이요, 하나나님의 뜻을 지연시키는 것입니다.
박윤식 목사, "잊어버렸던 만난" (휘선, 2024), 373-374쪽 中
릿마(가데스 바네아)에서 발행하여 다시 가데스 바네아로 돌아오기까지 여정
3. 마흔두 번 진을 친 장소
23) 데라 Terah(민33:27)
데라는 제 23차로 진을 친 장소입니다.
뜻] 데라는 '체류하다, 제체하다'라는 뜻입니다.
위치] 릿마(가데스)에서 광야 40년이라는 징벌을 받고, 아홉 번째 진친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이 후의 여정이 호르산 쪽으로 간 것을 볼 때, 다핫의 위치(북쪽)에 위치하였을 것입니다.
내용] '데라'는 구약성경에서 열세 번 나오는데, 두 번은 지명으로 사용되었고(민33:27-28), 나머지는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를 가리키는 인명으로 사용되었습니다(창11:24-26).
교훈] 데라에서의 사적은 성경에서 달리 기록된 곳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데라에 도착하기 직전에 진을 친 장소는 다핫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경로를 호르산이 있는 모세롯 근처로 이동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다핫으로부터 데라로 북상시키셨습니다.
샘이 많았던 릿마와, 와디(wadi) 가까운 곳에 있었던 데라는 지리적으로 물이 풍부한 환경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데라의 뜻처럼 이곳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광야 행군을 지연시키며 머물러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데스(릿마)에서의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40일이 40년으로 지연되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민13:25-14:35). 순종은 영생으로 가는 형통한 자름길이나, 뜻을 지연시키는 불순종은 영원한 사망입니다.
한편, '데라'는 아브라함의 아비의 이름이기도 한데, 그는 이름의 뜻처럼 지체하고 머뭇거리는 삶을 살았던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라'라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좋은 환경의 하란에 머물러 비체하다가 끝내 하나님의 뜻이 머물러 있는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고 말았습니다(창11:31-32, 행7:1-4). 지금 우리가 세상의 풍요로움에 마음이 기울어진 상태라면 그것은 바로 불순종의 시작이요, 하나나님의 뜻을 지연시키는 것입니다.
박윤식 목사, "잊어버렸던 만난" (휘선, 2024), 373-374쪽 中